
영화의 백미는 바로 이 순간이었습니다
친구가 추천해줘서 반신반의하며 본 영화였는데, 완전히 제 마음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몇 시간 동안 계속 생각이 났어요. 이런 영화는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데일리 무비입니다. 가끔 그런 영화가 있지 않나요? 총격전이나 화려한 CG가 없는데도, 오직 배우들의 대사와 눈빛만으로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영화 말이에요. 오늘 이야기할 ‘몰리스 게임’이 바로 그런 영화였어요. ‘소셜 네트워크’, ‘머니볼’의 각본가로 유명한 아론 소킨의 감독 데뷔작인데, 역시 ‘대사의 신’이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더라고요.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했던, 아주 뜨겁고 지적인 영화였답니다.
이 영화는 올림픽 출전을 꿈꾸던 최연소 스키 유망주 ‘몰리 블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모두가 촉망하던 그녀는 한순간의 끔찍한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되죠. 모든 걸 잃었다고 생각한 순간, 그녀는 평범한 삶 대신 전혀 다른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돼요. 바로 할리우드 스타, 월스트리트의 거물, 러시아 마피아까지 뒤섞인 비밀스러운 지하 포커 세계였죠. 처음에는 그저 심부름꾼에 불과했지만, 비상한 두뇌와 남다른 배짱을 가진 몰리는 이내 그 세계의 판을 읽고 직접 자신의 포커 하우스를 차리게 됩니다. ‘포커 프린세스’라 불리며 부와 명예를 거머쥐지만, 그녀가 쌓아 올린 제국이 커질수록 그림자 또한 짙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아론 소킨 특유의 ‘말맛’이 살아있는 각본이에요. 제시카 차스테인이 연기하는 몰리의 내레이션이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쉴 새 없이 이어지는데, 이게 전혀 지루하지가 않아요. 오히려 복잡한 포커 용어나 인물들의 관계를 명쾌하게 설명해주면서, 관객이 자연스럽게 몰리의 시선으로 이 화려하고 위험한 세계를 따라가게 만들더라고요. 특히 몰리와 그녀의 변호사 ‘찰리 재피'(이드리스 엘바)가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은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어요. 서로를 탐색하고, 의심하고, 결국엔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 오직 대사만으로 펼쳐지는데, 그 어떤 액션 장면보다도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어요. 마치 잘 짜인 체스 게임을 보는 듯한 지적인 쾌감이 상당했답니다.

이 장면에서 정말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대사의 향연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배우, 제시카 차스테인에 대한 칭찬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녀는 단순히 똑똑하고 야망 있는 여성을 넘어, 그 이면에 숨겨진 불안함과 고독, 그리고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자신만의 원칙을 가진 입체적인 ‘몰리 블룸’이라는 인물을 창조해냈어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포커판을 지배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부터, 모든 것을 잃고 법정에 서서 담담하게 자신을 변호하는 모습까지, 그녀의 연기는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에너지가 있었어요. 특히 저는 이드리스 엘바와의 연기 호흡이 정말 인상 깊었어요. 각자의 신념을 지키며 날카롭게 부딪히다가도, 어느새 인간적인 연대를 형성하는 두 사람의 관계는 이 차가운 범죄 드라마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톡톡히 해주더라고요.
영화는 단순히 ‘지하 포커 세계의 흥망성쇠’만을 다루지 않아요. 그보다는 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FBI에 체포된 몰리는 감형을 대가로 자신의 고객 명단, 즉 그들의 비밀이 담긴 ‘하드 드라이브’를 넘기라는 회유를 받게 되죠. 그녀가 그들의 비밀을 폭로한다면, 그녀는 쉽게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자신의 고객들을 보호하는 길을 택합니다. 그녀가 운영한 포커판은 분명 불법이었지만, 그 안에서 그녀는 자신만의 규칙과 신용을 지키려 했던 거죠. 모든 것을 잃어도 ‘내 이름’만큼은 지키고 싶다는 그녀의 마지막 대사는, 과연 무엇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인지에 대해 깊은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어요.
아버지와의 관계 역시 영화의 중요한 축을 담당해요. 케빈 코스트너가 연기한 몰리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끊임없이 높은 기준을 요구하고 압박하는 존재였죠. 영화 후반부, 공원 벤치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오랫동안 묵혀왔던 부녀간의 오해와 상처를 풀어내는 아주 중요한 장면인데요. 이 장면을 통해 우리는 몰리가 왜 그토록 성공에 집착하고, 강력한 남성들을 통제하는 세계에 매력을 느꼈는지 어렴풋이 짐작하게 됩니다. 어쩌면 그녀가 벌인 위험한 게임은, 평생 자신을 억압했던 아버지라는 존재로부터 인정받고 그를 뛰어넘고 싶었던 한 여성의 처절한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론적으로 ‘몰리스 게임’은 아주 잘 만들어진 케이퍼 무비이자, 한 여성의 성장을 담은 훌륭한 드라마라고 생각해요. 화려한 세계의 이면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결국 영화가 끝나고 마음에 남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원칙을 지키려 했던 ‘몰리 블룸’이라는 한 인간의 단단한 모습이었어요. 아론 소킨의 번뜩이는 각본과 제시카 차스테인의 인생 연기가 만나 엄청난 시너지를 만들어낸 작품인 것 같아요. 만약 빠른 전개와 지적인 대화로 가득 찬, 밀도 높은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분명 만족하실 거라고 확신합니다. 오랜만에 정말 ‘똑똑한’ 영화를 본 것 같아 기분이 좋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