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의 백미는 바로 이 순간이었습니다
어제 밤 잠이 안 와서 이 영화를 다시 봤습니다. 처음 봤을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 밀려왔어요. 영화가 끝나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문득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더라고요.
안녕하세요, 데일리 무비입니다. 여러분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언제 가장 많이 사용하시나요? 정말 다른 방법이 없을 때의 체념, 혹은 내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한 변명. 어쩌면 그 둘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이 말을 내뱉으며 현실의 무게를 견뎌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오늘 이야기할 영화는 바로 이 지독하게 현실적인 제목, ‘어쩔수가없다‘입니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이라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는데,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정말이지 기대감을 감출 수가 없더라고요. 범죄, 스릴러, 코미디라는 세 가지 장르가 한데 섞여 과연 어떤 맛을 낼지, 스크린 앞에서 두 시간을 꼼짝없이 숨죽이게 만들었던 그 강렬한 경험을 지금부터 풀어보려고 해요.
영화는 아주 평범하고, 어쩌면 우리 모두가 꿈꾸는 이상적인 중년의 삶에서 시작해요. 25년 동안 한 우물만 판 제지 전문가 ‘만수'(이병헌). 그는 누구보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사랑하는 아내 ‘미리'(손예진)와 아이들, 그리고 반려견과 함께하는 저녁 시간을 가장 큰 행복으로 여기는 남자예요. 카메라는 그의 만족스러운 일상을 따뜻하고 안정적인 구도로 비추면서 관객들에게 ‘이 행복이 과연 계속될까?’ 하는 아주 작은 불안의 씨앗을 심어놓죠. 아니나 다를까, 그 행복은 정말 종이 한 장처럼 너무나도 쉽게 찢겨 나가요. 회사로부터 받은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 만수의 세상은 그 순간 무너져 내립니다. 영화는 이 순간, 이병헌 배우의 얼굴을 집요하게 파고드는데, 단순히 충격을 받은 표정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와 인생 전체를 부정당한 남자의 공허함과 분노, 수치심이 뒤섞인 그 복잡한 감정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새겨 넣더라고요. 정말이지 압도적인 오프닝이었어요.
그 후 만수의 삶은 우리가 뉴스에서, 혹은 주변에서 너무나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전형적인 추락의 궤도를 그려요. 가족에게는 금방 재취업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지만, 현실은 냉혹하기만 합니다. 25년 경력이라는 자부심은 면접장에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혹은 최신 기술에 어둡다는 이유로 번번이 무시당하죠.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버티지만, 결국 평생의 꿈이었던 내 집마저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하게 돼요. 이 과정을 지켜보는 건 정말이지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박찬욱 감독은 만수의 비참함을 과장하거나 신파로 흘러가지 않게, 오히려 건조하고 담담하게 그려내서 그 현실감을 극대화해요. 특히 텅 빈 집안에서 홀로 이력서를 고쳐 쓰는 만수의 뒷모습을 길게 비추는 장면은 어떤 대사보다도 그의 절망과 외로움을 깊게 전달해 주더라고요. 그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찾아간 ‘문 제지’라는 회사, 그리고 그곳에서 선출 반장(박희순)에게 겪는 굴욕은 그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산산조각 내버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이 영상미에 완전히 반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는 평범한 사회 드라마의 궤도를 벗어나 박찬욱 감독의 색채가 짙게 밴 스릴러로 변주를 시작해요. ‘문 제지의 그 자리는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해낼 수 있다’는 확신, 그리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절박함이 만수 안의 무언가를 깨뜨려 버린 거죠. 그는 ‘어쩔 수 없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자리를 되찾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해요. 이 과정에서 보여주는 만수의 모습은 섬뜩할 정도로 치밀하고 냉정해져요.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한 인간이 생존이라는 극한의 상황 앞에서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이병헌이라는 배우는 신들린 연기로 보여줍니다. 선한 가장의 얼굴과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냉혹한 계획자의 얼굴을 오가는 그의 연기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동력이자 관전 포인트인 것 같아요. 관객들은 처음에는 만수를 응원하다가도, 점점 선을 넘어가는 그의 계획에 불안과 공포를 느끼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게 되죠.
이 영화가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던 건, 이토록 숨 막히는 스릴러의 전개 속에서도 감독 특유의 블랙코미디를 절묘하게 녹여냈다는 점이에요. 만수가 어설프게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들은 긴장감 속에서 갑작스러운 실소를 터뜨리게 만들어요. 예를 들어, 중요한 증거를 인멸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에서 갑자기 반려견이 나타나 방해를 한다거나, 상대를 위협하기 위해 준비한 도구가 어이없는 방식으로 오작동하는 식이죠.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들은 만수라는 인물이 본질적으로 악인이 아니라, 벼랑 끝에 몰린 어설픈 소시민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줘요. 그래서 우리는 그를 마냥 비난할 수만은 없게 되는 거죠. 이 웃음과 공포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야말로 ‘박찬욱 장르’라고 부를 수 있는 독보적인 영역이 아닐까 싶어요. 슬픈데 웃기고, 웃고 있는데 등골이 서늘해지는 이 기묘한 감정의 교차를 정말 탁월하게 연출했더라고요.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이병헌 배우는 말할 것도 없고요. 남편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아내 ‘미리’를 연기한 손예진 배우의 역할도 정말 중요했어요. 그녀는 단순히 남편을 걱정하는 수동적인 아내가 아니에요. 만수가 점점 변해가는 것을 감지하면서 불안해하지만, 동시에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또 다른 절박함으로 자신만의 선택을 해나가는 입체적인 인물이에요. 만수를 향한 그녀의 눈빛에는 사랑과 연민, 그리고 의심과 미묘한 공포가 공존하는데, 손예진 배우는 이 복잡한 내면을 섬세한 표정 연기 하나만으로 완벽하게 설득해냅니다. 그리고 만수의 계획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박희순 배우의 존재감은 또 어떻고요. 그는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자신만의 원칙과 신념으로 똘똘 뭉친, 어쩌면 만수와는 다른 방식으로 현실과 싸우고 있는 또 다른 ‘어쩔 수 없는’ 인물로 그려져요. 두 배우가 팽팽하게 대립하는 장면들은 그야말로 불꽃이 튀는 듯한 연기 대결이라,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영화는 결국 우리에게 아주 묵직한 질문을 던지며 끝을 맺습니다. 과연 만수의 선택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일까요? 만약 우리가 만수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우리는 과연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영화는 쉽게 답을 내려주지 않아요. 대신, 한 개인을 괴물로 만들어가는 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와 시스템의 폭력성을 날카롭게 고발하죠.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이 한순간의 실패로 나락으로 떨어지고, 재기할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현실. 그 속에서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위태로운 현실을 대변하는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참 무거워졌어요. 영화를 보고 나온 후에도 만수의 그 공허한 눈빛과 ‘어쩔수가없다’는 제목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더라고요. 단순히 재미있는 스릴러를 넘어, 우리 사회와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깊은 여운을 남기는 영화였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팬이라면, 그리고 깊이 있는 영화적 체험을 원하시는 분이라면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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