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2025): 폴 토마스 앤더슨이 그려낸, 끝나지 않는 투쟁의 기록

영화 장면

이 장면을 보고 눈물이 났어요

퇴근하고 집에 오니 너무 피곤했지만, 이 영화만큼은 꼭 보고 싶었습니다. 막상 재생 버튼을 누르니 피곤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어느새 영화에 완전히 빠져들어 있더라고요.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뛰는 조합이 있잖아요? 제게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그리고 숀 펜이 바로 그런 조합이었어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제작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이건 단순히 ‘기대된다’는 말로는 부족한, 무언가 거대한 작품이 나올 거라는 예감이 들었죠. 그리고 마침내 스크린으로 마주한 이 영화는, 제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묵직한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영화는 한때 세상을 바꾸겠다며 불꽃처럼 타올랐던 혁명가, 밥 퍼거슨의 현재를 비추며 시작해요. 16년이라는 세월은 이상을 부식시키고, 투쟁의 상처는 후유증으로 남아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갔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하는 밥은 더 이상 영웅이 아니에요. 망가진 몸과 마음, 그리고 유일한 희망인 딸 윌라와의 서먹한 관계 속에서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텨내는, 그림자 같은 존재일 뿐이죠. 영화의 초반부는 액션의 쾌감 대신, 한 인간이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를 지독하리만치 건조하고 현실적으로 그려내더라고요. 그 모습이 너무 처절해서, 보는 내내 가슴 한쪽이 아릿했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정말… 말로 다 표현하기가 어렵네요. 우리는 그가 얼마나 대단한 배우인지 이미 알고 있지만, 이번 영화에서의 그는 또 다른 경지에 오른 것 같았어요.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무력감 사이에서 길을 잃은 남자의 공허한 눈빛, 술과 약에 절어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 딸을 향한 애틋함과 죄책감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까지. 디카프리오는 대사보다 표정과 몸짓으로 ‘밥 퍼거슨’이라는 인물의 무너진 내면을 완벽하게 조각해냈어요. 특히 과거의 자신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스쳐 지나가는 짧은 미소와 이내 현실을 깨닫고 드리워지는 깊은 절망의 그림자는, 스크린을 압도하는 에너지를 뿜어냈습니다. 이건 단순히 캐릭터를 ‘연기’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 인물 자체로 살아 숨 쉬는 경지였던 것 같아요.

영화 장면

이 장면에서 정말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렇게 잿더미 속에서 겨우 숨만 쉬던 그의 삶에, 과거의 악몽이 다시 찾아옵니다. 오랜 숙적이자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간 장본인인 스티븐 J. 록조가 그의 딸, 윌라를 납치하면서부터죠. 이 역할을 맡은 숀 펜의 등장은 그야말로 화면의 공기를 바꿔버리더라고요. 그는 단순한 악당이 아니에요. 밥과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신념과 논리를 가진, 뒤틀렸지만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로 그려져요. 두 배우가 처음으로 대면하는 장면의 긴장감은 정말 숨이 멎을 정도였어요. 서로를 향한 증오와 경멸,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닮아있는 두 남자의 모습은 이 영화가 단순한 ‘딸 구하기’ 액션 영화가 아님을 분명히 보여주는 대목이었죠. 숀 펜은 광기 어린 위협 속에서도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예측 불가능한 악역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냈습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라는 걸 알고 봤지만, 그가 액션 스릴러 장르를 이렇게 자신만의 색깔로 풀어낼 줄은 몰랐어요. 영화에는 화려한 폭발이나 정신없는 교차 편집이 거의 등장하지 않아요. 대신, 인물의 감정선을 끈질기게 따라가는 롱테이크와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정적인 구도, 그리고 의미심장한 미장센으로 가득 차 있죠. 예를 들어, 밥이 옛 동료들을 찾아 헤매는 과정은 전형적인 액션 영화처럼 속도감 있게 그려지는 대신, 인물들 간의 어색한 공기와 세월의 간극, 서로를 향한 불신과 연민을 집요하게 파고들어요. 이 과정에서 느껴지는 건 장르적 쾌감이 아니라, 인물들이 겪는 감정의 소용돌이 그 자체예요. 마치 잘 짜인 범죄 소설을 읽는 것처럼, 감독은 액션의 외피 속에 묵직한 드라마와 심리 스릴러를 완벽하게 녹여냈더라고요. 정말 거장의 솜씨는 다르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즉 ‘또 다른 전투’라는 제목이 마음에 깊이 남아요. 이건 단순히 딸을 구하기 위한 한 번의 전투가 아니더라고요. 과거의 자신과 싸워야 하고, 변해버린 동료들의 불신과 싸워야 하며, 무엇보다 스스로를 갉아먹는 절망과 싸워야 하는, 끝나지 않는 투쟁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자유’라는 거대한 이상을 외치던 남자가 가장 소중한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거는 모습은, 우리에게 신념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신념이 무너진 자리에는 무엇이 남는지를 묻는 것 같았어요. 영화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아요. 그저 지독한 현실 속에서도 다음 전투를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을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죠. 그 여운이 정말 길고 깊게 남았습니다.

주연 배우들의 연기가 워낙 압도적이지만, 잠시 등장하는 옛 동료들의 역할도 인상 깊었어요. 한때는 같은 꿈을 꾸었지만 이제는 각자의 삶에 찌들어 현실과 타협해버린 그들의 모습은, 밥의 고독을 더욱 깊게 만들고 혁명 이후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치였어요. 특히 밥의 도움 요청을 냉정하게 거절하던 옛 동료의 눈빛에서 스쳐 지나가는 죄책감과 연민은 짧은 순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더라고요. 여기에 더해, 영화 내내 낮게 깔리는 배경음악은 불안과 긴장을 쌓아 올리다가도, 때로는 인물의 공허한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쓸쓸한 선율로 변주되며 영화의 감정선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모든 요소가 정말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느낌이었어요.

결론적으로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폭발적인 액션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조금 불친절한 영화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묵직한 드라마와 배우들의 신들린 연기, 그리고 한 감독의 뚝심 있는 연출이 만들어내는 깊이를 즐기는 분이라면, 아마 올해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꼽게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이건 단순한 장르 영화가 아니라, 한 인간의 영혼에 새겨진 투쟁의 연대기를 담아낸 작품이에요. 스크린을 통해 전달되는 인물들의 고통과 희망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끼고 싶다면, 이 영화를 절대 놓치지 마시길 바라요. 극장을 나선 후에도 오랫동안 밥 퍼거슨의 지친 얼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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