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정신없이 바쁜 세상에서, 문득 ‘완벽한 하루란 뭘까’ 하는 생각을 해보신 적 있나요? 아마 많은 분들이 특별한 이벤트나 화려한 성공을 떠올릴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여기, 매일 똑같은 일상을 그 누구보다 충만하게 살아내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완벽한 날들’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영화가 있어요. 바로 빔 벤더스 감독의 신작, ‘퍼펙트 데이즈’랍니다. 이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는 순간, 마치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신 듯 마음이 잔잔하게 데워지는 기분이었어요.
영화는 도쿄 시부야의 공중화장실 청소부인 ‘히라야마’의 아주 평범하고도 반복적인 일상을 따라가요. 그는 매일 새벽 동네를 청소하는 빗자루 소리에 잠에서 깨고, 정성껏 키우는 작은 화초에 물을 주고, 낡은 승합차에 올라 카세트 테이프로 오래된 팝 음악을 들으며 일터로 향하죠. 그의 일은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하찮게 보일 수 있는 화장실 청소지만, 히라야마는 마치 장인이 작품을 다루듯 세심하고 꼼꼼하게 자신의 일을 해내요. 점심시간에는 신사 숲속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으며 필름 카메라로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 즉 ‘코모레비(木漏れ日)’를 찍는 것이 그의 작은 행복이고요. 퇴근 후에는 동네 목욕탕에서 피로를 풀고, 단골 식당에서 가볍게 저녁을 먹고, 잠들기 전에는 헌책방에서 산 책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정말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의 연속이죠. 하지만 영화는 이 반복 속에서 그가 얼마나 큰 만족과 평화를 느끼는지를 아주 섬세하게 보여주더라고요.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다름’이 아닌 ‘같음’의 미학을 이야기한다는 점인 것 같아요. 우리는 늘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살아가잖아요. 하지만 히라야마는 그저 오늘을 충실히 살아낼 뿐이에요. 그에게 행복은 먼 미래에 있는 목표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거든요. 카세트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루 리드의 ‘Perfect Day’나 패티 스미스의 음악은 그의 소박한 일상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배경음악이자, 그의 내면을 대변하는 목소리처럼 느껴졌어요. 디지털 음원이 넘쳐나는 시대에 굳이 카세트 테이프를 고집하는 모습에서, 조금은 불편하고 느리더라도 자신만의 속도와 방식을 지키려는 그의 뚝심이 엿보였어요. 아마 감독은 이런 아날로그적인 소품들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감각들을 다시 일깨워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주인공 ‘히라야마’를 연기한 야쿠쇼 코지의 연기는 정말… 뭐라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예요. 영화 내내 대사가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표정, 눈빛, 작은 몸짓 하나하나에서 수만 가지 감정이 느껴졌어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바라볼 때의 순수한 기쁨, 갑자기 찾아온 조카를 보며 느끼는 당혹감과 애정, 그리고 홀로 차를 몰며 웃음과 눈물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을 짓는 마지막 장면까지. 그의 연기는 ‘히라야마’라는 인물 그 자체였고, 덕분에 관객들은 아무런 설명 없이도 그의 삶에 깊이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건 너무나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히라야마의 일상에도 작은 파문은 일어요. 갑자기 가출한 조카가 찾아오기도 하고, 동료와의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과거의 인연과 마주치기도 하죠. 하지만 그는 이런 예상치 못한 변수들을 억지로 피하거나 거부하지 않아요.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고,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죠. 마치 잔잔한 호수에 돌이 던져져 잠시 물결이 일지만 이내 다시 평온을 되찾는 것처럼요. 저는 이 부분이 특히 인상 깊었어요. 완벽한 하루라는 게 아무런 문제도 없는 무균 상태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예상치 못한 균열과 변화마저도 삶의 일부로 껴안을 수 있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거든요.
영화는 ‘코모레비’라는 일본어 단어에 담긴 의미를 계속해서 보여줘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매일 같은 나무를 보더라도 어제의 햇살과 오늘의 햇살은 결코 같을 수 없죠. 히라야마는 바로 그 찰나의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필름에 담아요. 그의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매일 새로운 햇살, 새로운 만남, 새로운 감정이 스며들고 있었던 거죠. ‘세상은 사실 여러 세계로 이루어져 있고, 서로 이어져 있는 듯 보여도 이어져 있지 않은 세계도 있다’는 영화 속 대사처럼, 히라야마는 자신만의 작은 세계를 단단하고 아름답게 가꾸며 살아가고 있었어요.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완벽한 세계를요.
영화를 보고 나니 제 일상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매일 아침 커피를 내리는 시간, 출퇴근길에 듣는 음악,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무심코 지나쳤던 수많은 순간들이 사실은 내 하루를 채우는 소중한 ‘코모레비’가 아니었을까 하고요. ‘퍼펙트 데이즈’는 우리에게 거창한 교훈을 주려고 하지 않아요. 그저 당신의 오늘 하루도 충분히 완벽할 수 있다고, 당신이 살아내는 이 순간이 바로 가장 소중한 시간이라고 따뜻하게 속삭여주는 영화인 것 같아요.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무기력함을 느끼는 분이 계시다면, 이 영화가 분명 큰 위로와 선물이 되어줄 거라고 생각해요. 조용한 극장에서 히라야마의 하루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마음속에 잔잔한 행복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