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장면에서 정말 소름이 돋았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오니 너무 피곤했지만, 이 영화만큼은 꼭 보고 싶었습니다. 막상 재생 버튼을 누르니 피곤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어느새 영화에 완전히 빠져들어 있더라고요.
가끔 영화를 보다 보면, 아주 근본적인 질문에 부딪힐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나는 과연 누구일까?’,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와 같은 사람일까?’ 같은 생각들이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폭력의 역사‘는 제게 바로 그런 질문을 아주 날카롭고 묵직하게 던진 영화였어요. 평화롭고 단란해 보이는 한 가족의 일상이 아주 사소한 사건 하나로 어떻게 균열되고 파괴되어 가는지를 정말 서늘하게 보여주더라고요.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한동안은 우리 주변의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 뒤에 어떤 과거가 숨어있을지 상상하게 될 정도로 깊은 여운이 남았답니다.
영화는 인디애나의 작은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시작돼요. 주인공 톰 스톨(비고 모텐슨)은 정말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사람이에요. 아름다운 아내 에디(마리아 벨로)와 두 아이를 둔,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인 가장이죠. 작은 식당을 운영하며 이웃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아메리칸 드림’의 표본처럼 보여요. 모든 것이 평화롭고, 심지어는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의 일상이 계속되죠. 관객인 우리마저 이 평화에 안심할 때쯤, 영화는 단 한 순간의 사건으로 모든 것을 뒤집어 버립니다. 어느 날 밤, 톰의 식당에 강도가 들이닥치거든요. 톰은 놀라운 침착함과 전문가 같은 몸놀림으로 강도들을 제압하고, 순식간에 마을의 영웅으로 떠오릅니다. 지역 뉴스는 그의 얼굴로 도배되고, 모두가 그의 용감함을 칭송하죠.
하지만 이 영웅담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어요. 그의 얼굴이 언론에 노출된 며칠 뒤, 톰의 식당에 험악한 인상의 남자들이 찾아옵니다. 한쪽 눈에 상처가 있는 카리스마 넘치는 남자 칼 포가티(에드 해리스)는 톰을 보더니 아주 익숙하다는 듯 ‘조이’라고 불러요. 그는 톰이 사실은 과거 필라델피아에서 악명을 떨쳤던 잔혹한 킬러 ‘조이 쿠삭’이며, 자신과 얽혔던 끔찍한 과거를 숨기고 신분을 세탁한 것이라고 주장하죠. 톰은 당연히 필사적으로 부정하지만, 포가티의 확신에 찬 태도와 그가 던지는 과거의 조각들은 톰의 아내 에디는 물론, 관객들마저 혼란에 빠뜨려요. 이때부터 영화의 공기는 완전히 달라져요. 평화롭던 일상의 풍경은 그대로인데, 그 안에 보이지 않는 의심과 불안, 그리고 폭력의 그림자가 짙게 깔리기 시작하는 거죠. 에드 해리스의 등장은 정말 압도적이었어요. 길지 않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그의 서늘한 눈빛과 목소리만으로도 영화 전체의 긴장감을 극도로 끌어올리더라고요.

이 장면을 보고 눈물이 났어요
이 영화의 가장 무서운 점은 외부의 위협보다도 가족 내부에서 시작되는 균열을 집요하게 파고든다는 점이에요. 가장 믿고 사랑했던 남편이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공포. 에디는 남편을 믿으려 애쓰지만, 낯선 남자들이 남편의 과거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문득문득 톰에게서 낯선 ‘조이’의 모습을 발견하게 돼요. 특히 두 사람의 관계에서 폭력과 사랑이 기묘하게 뒤섞이는 장면들은 정말 충격적이면서도 인상 깊었어요. 남편의 폭력성에 공포를 느끼면서도 동시에 거기에 기묘한 끌림을 느끼는 에디의 복잡한 심리를 마리아 벨로는 정말 섬세하게 연기해냈어요. 평범한 주부였던 그녀가 남편의 정체를 의심하며 겪는 감정의 파고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또한, 아들 잭 역시 아버지의 ‘영웅담’ 이후 학교에서 폭력을 해결책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는 모습은, 폭력이라는 것이 어떻게 대물림되고 전염되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죠.
무엇보다 비고 모텐슨의 연기는 정말 ‘경이롭다’는 말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것 같아요. 그는 ‘톰 스톨’과 ‘조이 쿠삭’이라는 두 개의 인격을 연기하는 게 아니에요. ‘조이 쿠삭’이라는 폭력적인 본능을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톰 스톨’이라는 선량한 가면을 쓰고 살아가려는 한 남자의 내면을 완벽하게 표현해냈어요. 평소에는 더없이 온화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짓다가도,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냉혹하고 동물적인 눈빛의 변화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죠. 그의 몸이 폭력을 기억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요. 관객들은 영화 내내 ‘과연 톰은 조이일까?’라는 질문을 던지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질문은 ‘톰은 조이라는 과거를 완전히 지울 수 있을까?’로 바뀌게 돼요. 비고 모텐슨은 이 미묘한 심리적 경계선을 단 하나의 표정과 몸짓으로 오가며 관객들을 스크린 속으로 완전히 끌어들입니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은 역시 거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이 영화에서 폭력을 결코 멋지거나 화려하게 그리지 않아요. 오히려 그 반대죠. 영화 속 폭력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끔찍하며, 불쾌하기까지 해요. 총성은 요란하지 않고 둔탁하며, 폭력의 결과는 처참하고 지저분하죠. 액션의 쾌감 같은 건 전혀 느낄 수 없어요. 감독은 폭력이란 본질적으로 파괴적이고 추악한 것임을 아주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그는 ‘폭력이 과연 인간의 본성인가?’라는 더 큰 질문을 던져요. 톰이 필사적으로 지키려 했던 평화로운 가정과 마을 역시, 어쩌면 거대한 폭력의 역사 위에 세워진 위태로운 신기루는 아니었을까요? 영화의 제목인 ‘폭력의 역사’는 단순히 주인공 개인의 과거사를 의미하는 것을 넘어, 폭력으로 세워진 미국의 역사, 나아가 인류 전체의 역사에 대한 은유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정말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명장면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피비린내 나는 사건들을 겪고 집으로 돌아온 톰. 식탁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먼저 앉아있죠. 톰이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자, 잠시의 침묵이 흐릅니다. 그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하는 그 무거운 공기. 딸아이가 아빠의 접시를 가져다주고, 아들이 샐러드를 건네주는 그 아주 사소한 행위들 속에 수만 가지 감정과 질문이 오고 가요. ‘우리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당신은 누구인가요?’, ‘우리는 당신을 용서할 수 있을까?’. 영화는 끝내 아무런 답도 주지 않고 그저 묵묵히 그 가족의 모습을 비추며 끝이 나요. 어쩌면 그 어떤 대사보다도 이 침묵이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모든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라는 형태로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모습은 현실의 우리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더라고요.
‘폭력의 역사’는 단순한 스릴러나 범죄 영화가 아니었어요. 한 인간의 정체성과 과거, 그리고 폭력의 본질에 대해 아주 깊이 파고드는 한 편의 서늘한 심리 드라마에 가까웠죠. 혹시 평범한 일상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을 담은, 그리고 보고 난 뒤에도 깊은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영화를 찾고 계신다면, 이 영화를 조심스럽게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아마 비고 모텐슨의 얼굴에 담긴 그 복잡한 감정들이 오랫동안 여러분의 마음속에 남게 될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