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터슨(2016): 반복되는 일상에서 시를 발견하는 아주 특별한 방법

가끔은 세상의 모든 소음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요? 스마트폰 알림은 쉴 새 없이 울리고, 세상은 더 빠르고 더 자극적인 것을 향해 달려가라고 재촉하는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저는 이 영화, 짐 자무시 감독의 ‘패터슨’을 떠올리곤 합니다. 마치 잘 우려낸 따뜻한 차 한 잔처럼, 번잡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주는 그런 영화거든요.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의 그 고요한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거대한 사건도, 극적인 갈등도 없는데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아주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경험이었죠.

영화의 이야기는 정말이지 단순 그 자체예요. 미국 뉴저지의 ‘패터슨’이라는 도시에 사는 버스 운전사의 이름이 바로 ‘패터슨’이라는, 말장난 같은 설정에서 시작하죠. 그는 매일 아침 거의 같은 시간에 일어나, 아내 로라에게 입을 맞추고, 시리얼을 먹고, 버스 차고지로 출근해요. 그리고 정해진 노선을 따라 버스를 운전하죠. 승객들이 나누는 소소한 대화들을 배경음악처럼 들으며, 그는 틈틈이 자신만의 비밀 노트에 시를 써 내려가요. 일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저녁을 먹고, 애완견 마빈을 데리고 산책을 나가 단골 바에 들러 맥주 한 잔을 마시는 게 하루의 끝이에요. 월요일부터 다음 월요일까지, 영화는 이토록 단조로워 보이는 패터슨의 일주일을 그저 담담하게 따라갈 뿐입니다.

이 영화의 심장과도 같은 배우, 애덤 드라이버의 연기는 정말 놀라웠어요. 우리는 그를 ‘스타워즈’의 카일로 렌이나 ‘결혼 이야기’에서의 격정적인 모습으로 기억하지만, ‘패터슨’에서의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아요. 거대한 감정의 폭발 대신, 그의 얼굴에는 잔잔한 호수 같은 평온함이 머물러 있죠. 버스 운전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 시상을 떠올리며 희미하게 미소 짓는 입꼬리, 아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그 모든 순간들이 모여 ‘패터슨’이라는 인물을 완성하더라고요. 대사보다 그의 침묵과 표정이 더 많은 이야기를 건네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이토록 고요한 역할을 이토록 깊이 있게 표현해낼 수 있는 배우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였답니다.

패터슨의 곁에는 그의 완벽한 짝꿍, 아내 로라가 있어요. 골쉬프테 파라하니가 연기한 로라는 패터슨과는 정반대의 매력을 가진 인물이에요. 매일 새로운 꿈을 꾸고, 온 집안을 흑백의 동그라미 무늬로 채우고, 독학으로 기타를 배워 컨트리 가수가 되겠다고 선언하는, 아주 자유롭고 사랑스러운 영혼이죠. 자칫하면 엉뚱하고 철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영화는 그녀를 통해 삶의 또 다른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패터슨이 일상의 반복 속에서 시를 발견한다면, 로라는 매일의 변화와 도전 속에서 예술을 발견하는 사람이죠. 서로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응원하는 이 부부의 모습은, 제가 본 가장 이상적인 파트너십 중 하나였어요. ‘당신은 버스 운전사 시인, 나는 컨트리 가수’라며 웃는 그들의 모습이 어찌나 따뜻하고 예뻐 보이던지요.

무엇보다 이 영화는 ‘시’에 대한 영화이기도 해요. 영화 중간중간 패터슨이 쓴 시가 그의 목소리와 함께 화면에 텍스트로 나타나는데, 그 순간들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그의 시는 거창한 주제를 다루지 않아요. 오하이오 블루팁 성냥갑, 샤워실에 떨어진 머리카락, 아침의 햇살 같은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에서 영감을 얻죠. 감독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어요. ‘시라는 건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야. 당신이 세상을 조금만 더 다정하고 세심한 눈으로 바라본다면, 당신의 모든 일상이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어.’ 라고요. 버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 사람들의 대화 조각들, 폭포의 물소리. 패터슨은 그 모든 것들을 주워 담아 자신만의 언어로 조립해내요. 영화를 보고 나면, 저도 모르게 주변의 작은 것들을 한 번 더 유심히 관찰하게 되더라고요.

짐 자무시 감독의 연출은 이 영화의 시적인 분위기를 완성하는 핵심이에요. 그는 의도적으로 속도를 늦추고, 관객들이 패터슨의 리듬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만들어요. 똑같은 아침 풍경, 똑같은 버스 노선, 똑같은 산책길이 반복적으로 보여지지만 신기하게도 전혀 지루하지 않아요. 오히려 그 미세한 차이점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죠. 월요일의 대화와 화요일의 대화가 다르고, 어제의 풍경과 오늘의 풍경이 미묘하게 다른 것처럼요. 마치 매일 같은 길을 걸어도 어제 보지 못했던 작은 들꽃을 오늘 발견하는 기쁨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영화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시처럼 느껴지는 건 바로 이런 섬세한 연출 덕분인 것 같아요.

주인공 부부 외에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도 정말 사랑스러워요. 매일 밤 들르는 바에서 실연의 아픔을 토로하는 남자, 체스에 빠진 바텐더, 혁명을 꿈꾸는 세탁방의 래퍼 지망생까지. 모두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패터슨의 일상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죠. 그리고 이 영화의 ‘신 스틸러’를 꼽으라면 단연 불독 ‘마빈’을 빼놓을 수 없겠네요. 늘 심술궂은 표정으로 패터슨을 쳐다보고, 산책길에서는 고집을 부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사고(?)를 치는 마빈은 영화의 유머를 담당하는 아주 중요한 캐릭터예요. 이 강아지의 연기 덕분에 칸 영화제에서 ‘팜 도그’ 상을 받았다고 하니, 얼마나 대단한지 아시겠죠?

‘패터슨’은 저에게 큰 위로를 준 영화예요. 꼭 특별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위대한 업적을 남기지 않아도 괜찮다고, 당신의 하루하루는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고 아름답다고 속삭여주는 것 같았거든요. 어쩌면 행복은 거창한 목표를 이뤘을 때가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만의 작은 기쁨과 시를 발견하는 능력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혹시 지금 삶이 너무 단조롭고 무의미하게 느껴진다면, 이 영화를 조용히 한번 만나보시길 추천해요. 당신의 평범한 하루를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어 줄 따뜻한 마법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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