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브룩스(2007): 완벽한 신사의 가면 뒤, 멈출 수 없는 살인의 속삭임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했던 배우의 이미지를 한순간에 부숴버리는 작품들이 있죠. 저에게 케빈 코스트너는 늘 선하고 정의로운, 혹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우직한 남자의 상징 같은 배우였어요. ‘늑대와 춤을’이나 ‘보디가드’에서의 그를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아마 공감하실 거예요. 그런데 오늘 이야기할 영화, ‘미스터 브룩스’는 그가 가진 선한 이미지를 아주 서늘하고 날카롭게 배반하는, 그래서 더 매력적이고 소름 돋는 작품이었어요. ‘성공한 사업가이자 자상한 가장, 그리고 연쇄살인마’라는 이질적인 조합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영화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 내면의 중독과 고통을 집요하게 파고들더라고요.

영화는 올해의 인물로 선정될 만큼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사업가, 얼 브룩스의 완벽한 일상을 보여주며 시작해요. 사랑하는 아내와 대학에 다니는 딸, 누가 봐도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이죠. 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마샬’이라는 또 다른 자아가 살고 있어요. 이 마샬은 브룩스 안의 살인 충동 그 자체를 대변하는 존재로, 끊임없이 그를 유혹하고 속삭이죠. 브룩스는 이 끔찍한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익명의 중독자 모임에 나가 기도까지 하지만, 결국 2년 만에 다시금 살인의 유혹에 넘어가고 맙니다. 언제나처럼 흔적 하나 남기지 않는 완벽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한 순간, 예상치 못한 실수가 발생해요. 하필이면 살인을 저지르던 방의 커튼을 열어두었고, 그 장면이 한 사진작가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기고 만 거죠. 이 영화의 진짜 이야기는 바로 이 지점, 완벽했던 그의 세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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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단연 케빈 코스트너의 연기 변신인 것 같아요. 그는 두 얼굴의 사나이, 미스터 브룩스를 정말 섬세하게 그려냈어요. 낮에는 더없이 젠틀하고 부드러운 가장의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살인을 계획하거나 마샬과 대화할 때의 그는 눈빛부터 달라져요. 그 공허하고 차가운 눈빛은 ‘내가 알던 케빈 코스트너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설고 강렬한 인상을 남기더라고요. 특히 그의 내면 속 악마 ‘마샬’을 연기한 윌리엄 허트와의 연기 호흡은 정말 압권이었어요. 실제로 보이지 않는 존재를 상상하며 연기해야 했을 텐데, 두 배우는 마치 한 몸처럼, 혹은 그림자처럼 붙어서 브룩스의 내적 갈등을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해냈습니다. 마샬이 유혹적인 목소리로 브룩스를 조롱하고 부추길 때,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결국 그에 동조하고 마는 브룩스의 모습은 이 영화가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라 깊이 있는 심리 드라마임을 증명하는 장면들이었어요.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드는 또 다른 축은 브룩스를 협박하는 사진작가 ‘스미스’와 그를 쫓는 형사 ‘앳우드’의 존재예요. 보통의 협박범이라면 돈을 요구하겠지만, 스미스는 아주 기이한 제안을 하죠. 바로 다음 살인에 자신을 데려가 달라는 거예요. 살인을 동경하고 희열을 느끼는 또 다른 종류의 악마를 만난 거죠. 이 예측 불가능한 인물 때문에 영화의 긴장감은 한층 더 팽팽해져요. 한편, 수백만 달러의 이혼 소송과 동시에 다른 연쇄살인범을 쫓는 베테랑 형사 앳우드(데미 무어)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브룩스의 흔적에 조금씩 다가서기 시작합니다. 그녀 역시 완벽하지 않고 개인적인 문제들로 고통받는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져서 좋았어요. 전혀 다른 세 인물이 각자의 욕망과 목적을 가지고 얽히고설키면서 만들어내는 서스펜스는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하더라고요.

감독인 브루스 A. 에반스는 자극적인 장면이나 빠른 전개에 의존하기보다는, 인물의 내면을 차분하고 밀도 높게 쌓아 올리는 방식을 택했어요. 그래서 영화의 전체적인 톤은 화려하기보단 어둡고 정적이에요. 브룩스의 깔끔하고 정돈된 집과 사무실의 풍경은 그의 살인만큼이나 냉정하고 비인간적인 느낌을 주면서, 그의 이중적인 삶을 시각적으로도 잘 보여주는 장치로 활용된 것 같아요. 또한, 영화는 ‘살인’이라는 행위를 단순한 범죄가 아닌 ‘중독’의 관점에서 접근해요. 브룩스가 자신의 충동을 억제하기 위해 ‘평온을 비는 기도’를 읊조리는 장면은 정말 역설적이면서도 인상 깊었어요. 그는 자신이 괴물이라는 것을 알기에 고통스러워하고,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결국 자신의 본성을 거부하지 못하죠. 이 지점이 미스터 브룩스라는 캐릭터를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복잡하고 연민이 가는 악인으로 만드는 핵심적인 요소가 아니었나 싶어요.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악은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만들어지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더라고요. 영화는 브룩스의 과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진 않지만, 그가 겪는 고통과 함께 그의 딸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어두운 그림자를 발견하고 경악하는 모습을 통해 이 질문을 더욱 깊게 파고들어요. 혹시 이 끔찍한 성향이 대물림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의 두려움은, 그가 저지른 어떤 살인보다도 더 큰 공포와 비극으로 다가왔습니다. 사랑하는 딸만큼은 자신과 같은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은 아버지로서의 고뇌가 그를 더욱 복합적인 인물로 만들었죠. 영화는 명확한 답을 내리기보다는, 인간 내면에 잠재된 어둠과 그 어둠에 잠식당하지 않으려는 한 인간의 처절한 싸움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묵직한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는 것 같아요.

결론적으로 ‘미스터 브룩스’는 단순한 연쇄살인마 영화의 공식을 뛰어넘는 아주 잘 만들어진 심리 스릴러라고 생각해요. 화끈한 액션이나 반전을 기대하셨다면 조금은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인물의 내면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드라마를 좋아하신다면 분명 만족하실 거예요. 케빈 코스트너의 파격적인 연기 변신과 더불어, 인간의 이중성과 중독이라는 주제를 섬세하고 설득력 있게 풀어낸 점이 정말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완벽한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내 안에는 또 다른 내가 살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서늘한 질문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잘 짜인 각본과 배우들의 호연이 빛나는 숨겨진 수작, ‘미스터 브룩스’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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