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어 윌 비 블러드(2007): 검은 황금이 집어삼킨 한 남자의 영혼

영화 장면

이 장면에서 정말 소름이 돋았습니다

오랜만에 집에 혼자 있는 주말, 뭘 볼까 고민하다가 이 영화를 선택했습니다. 보는 내내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영화가 끝났을 때는 이미 밤 12시가 넘어 있었지만, 후회는 전혀 없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데일리 무비입니다. 가끔 그런 영화가 있어요. 보고 나면 마치 거대한 산을 넘은 것처럼 숨이 가빠지고, 한동안 다른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영화요. 제게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언제나 그런 작품으로 기억되는 것 같아요.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의 충격은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생생하더라고요. 단순히 재미있다, 슬프다 같은 한두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인간의 욕망과 광기라는 거대한 심연을 2시간 38분 동안 묵묵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경험이었죠. 최근에 다시 한번 이 영화를 마주할 기회가 있었는데, 여전히 그 무게감은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더라고요. 오히려 나이를 먹고 세상을 조금 더 알게 된 지금 보니, 영화 속 인물들의 감정과 선택이 더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영화의 시작은 대사 한마디 없이, 황량한 서부의 땅을 홀로 파내려가는 한 남자의 모습을 비춰줘요. 바로 다니엘 데이루이스가 연기한 ‘다니엘 플레인뷰’라는 인물이죠. 그는 은을 캐려다 다리를 다치고, 석유를 발견하고, 우연히 동료의 아들 ‘H.W.’를 거두게 돼요. 영화는 그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설명해주지 않아요. 그저 묵묵히 석유를 찾아 헤매는 그의 여정을 따라갈 뿐이죠. 그러다 ‘폴 선데이’라는 젊은이에게서 그의 고향 마을 ‘리틀 보스턴’에 석유가 샘솟는다는 정보를 듣게 되고, 다니엘은 아들 H.W.와 함께 그곳으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폴의 쌍둥이 형제이자, ‘제3계시교’라는 신흥 종교의 카리스마 넘치는 목사인 ‘일라이 선데이’와 운명적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영화의 큰 줄기는 바로 이 두 사람, 즉 석유로 대변되는 자본주의적 탐욕과 종교로 대변되는 또 다른 형태의 탐욕이 어떻게 서로를 이용하고, 충돌하고, 결국 파멸로 이끌어가는지를 그리고 있어요.

영화 장면

이 장면에서 정말 소름이 돋았습니다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다니엘 데이루이스의 연기를 빼놓을 수는 없을 거예요. 사실 이 영화는 다니엘 플레인뷰라는 한 인물에 대한 집요하고도 깊은 탐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다니엘 데이루이스는 그냥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다니엘 플레인뷰라는 인물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 같았어요. 구부정한 자세, 굵고 낮은 목소리, 그리고 타인을 향한 불신과 경멸이 가득 담긴 그 눈빛까지. 그는 ‘가족’과 ‘공동체’를 이야기하지만, 그에게 가족은 사업을 위한 방패막이일 뿐이고, 타인은 경쟁자 아니면 이용 대상에 불과해요. 그의 내면에는 ‘나는 내 안의 경쟁심 때문에 누구도 좋아할 수 없다’는 독백처럼, 인간에 대한 깊은 혐오가 자리 잡고 있죠. 석유를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그는 아들을 이용하고, 이웃을 속이고, 심지어 신을 부정하는 척 연기하기도 해요. 성공을 향해 달려갈수록 그는 점점 더 부유해지지만, 동시에 점점 더 고독하고 공허한 괴물이 되어가는 모습은 정말이지 소름이 돋을 정도였어요. 특히 영화 후반부, 거대한 저택에 홀로 남아 술에 취해 망가져가는 그의 모습은 탐욕의 끝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처절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그의 맞은편에는 폴 다노가 연기한 ‘일라이 선데이’가 서 있죠. 저는 이 영화에서 폴 다노의 연기 또한 다니엘 데이루이스 못지않게 위대했다고 생각해요. 일라이는 신의 이름을 팔아 자신의 영향력과 부를 쌓으려는 위선적인 목사예요. 그는 다니엘의 석유 시추를 돕는 대가로 자신의 교회를 위한 돈을 요구하고, 마을 사람들 앞에서 다니엘에게 공개적인 굴욕을 주기도 하죠. 다니엘이 돈과 석유라는 물질적인 것으로 사람들을 지배하려 한다면, 일라이는 믿음과 구원이라는 정신적인 것으로 그들을 휘어잡으려 해요. 둘은 방식만 다를 뿐, 사람들을 지배하고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욕망의 화신이라는 점에서 똑 닮았더라고요. 특히 두 사람이 교회와 유정탑 앞에서 팽팽하게 대립하는 장면들은,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긴장감을 선사했어요. 서로의 뺨을 때리고, 진흙탕에 구르며 서로를 저주하는 그들의 모습은, 자본과 종교라는 거대한 두 힘이 얼마나 추악하게 충돌할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연출은 정말 감탄을 자아내요. 그는 서두르지 않고 아주 느리고 묵직한 호흡으로 이야기를 쌓아 올려요. 광활하고 텅 빈 서부의 풍경을 담아내는 촬영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 같았어요. 황량한 대지는 마치 성공을 위해 모든 인간성을 버린 다니엘의 텅 빈 내면을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졌고요. 특히 유정탑에서 석유가 터져 나오고 불길이 치솟는 장면은, 마치 지옥의 문이 열리는 듯한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다니엘의 탐욕이 본격적으로 폭발하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해냈더라고요. 감독은 인물들의 대사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에 깊은 의미를 담아두고 관객이 스스로 그것을 곱씹어보게 만들어요. 그래서 이 영화는 한번 보는 것보다 두 번, 세 번 볼 때 더 많은 것들이 보이는 영화인 것 같아요.

영화의 분위기를 완성하는 또 다른 축은 바로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 조니 그린우드가 만든 음악이에요. 이 영화의 음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배경음악과는 조금 달라요. 아름다운 멜로디 대신, 불협화음과 날카로운 현악기 소리가 신경을 긁으며 영화 내내 불안하고 기괴한 분위기를 만들어내죠. 마치 땅속에서 석유가 꿈틀거리며 솟아오르는 소리 같기도 하고, 파멸을 향해 돌진하는 다니엘의 불안한 내면을 표현하는 소리 같기도 했어요. 덕분에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극도의 긴장감을 느끼게 되는 거죠. 영상과 음악이 이렇게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우는 정말 드문데, ‘데어 윌 비 블러드’는 그 어려운 걸 해낸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이 영화는 ‘피가 있을 것이다(There Will Be Blood)’라는 제목처럼, 탐욕이 모든 것을 집어삼킨 끝에 남는 것은 결국 피와 파멸뿐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다니엘 플레인뷰는 그토록 원하던 부와 성공을 모두 손에 넣었지만, 결국 그의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죠. 그는 아들에게 버림받고, 그의 마지막 남은 인간성마저 스스로 파괴해버려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 볼링장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결말은 ‘I’m finished’라는 그의 마지막 대사와 함께 깊고 어두운 여운을 남깁니다. 과연 무엇을 위한 성공이었을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게 만들더라고요. ‘데어 윌 비 블러드’는 결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에요. 하지만 인간의 본성과 현대 자본주의의 맨얼굴을 이토록 집요하고 강렬하게 파고든 영화도 드물 겁니다. 압도적인 연기와 연출, 음악이 어우러진, 그야말로 ‘걸작’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영화이니,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꼭 한번 도전해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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