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상미에 완전히 반했습니다
오랜만에 집에 혼자 있는 주말, 뭘 볼까 고민하다가 이 영화를 선택했습니다. 보는 내내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영화가 끝났을 때는 이미 밤 12시가 넘어 있었지만, 후회는 전혀 없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데일리 무비입니다. 가끔 그런 영화가 있어요. 보고 나면 단순히 ‘재미있다’는 감상을 넘어, 마음속에 묵직한 무언가를 남기는 영화들 말이에요.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 ‘트럼보‘가 제게는 바로 그런 작품이었어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세상의 거대한 벽과 맞서 싸운 한 사람의 이야기가 얼마나 큰 울림을 줄 수 있는지, 새삼 깨닫게 해준 영화였죠. 화려했던 할리우드의 황금기, 그 뒤에 숨겨진 광기와 부조리, 그리고 그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한 작가의 펜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시작해볼까 해요.
영화는 1940년대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시작돼요. 당시 달튼 트럼보(브라이언 크랜스턴)는 그야말로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였어요. 쓰는 족족 작품은 흥행하고, 업계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으며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인물이었죠. 하지만 그의 삶은 냉전 시대의 그림자가 짙어지면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요. 바로 ‘매카시즘‘이라는 광풍이 할리우드를 덮치면서,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힌 그는 청문회에 소환되고 결국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르게 됩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은 거죠. 일자리, 친구, 명성까지도요. 보통 사람이라면 여기서 좌절하고 무너졌을 테지만, 트럼보는 달랐어요. 그는 가족을 지키고, 무엇보다 글쓰기를 멈추지 않기 위해 기상천외한 방법을 선택합니다. 바로 여러 개의 가짜 이름, 즉 필명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거예요. B급 영화 시나리오부터 시작해 익명의 작가로 살아가며, 그는 자신을 내쫓은 할리우드를 향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용한 복수를 준비하기 시작하더라고요.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입니다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브라이언 크랜스턴의 연기를 빼놓을 수가 없어요. 사실상 ‘트럼보’는 브라이언 크랜스턴의, 브라이언 크랜스턴을 위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예요. 미드 ‘브레이킹 배드’의 월터 화이트로 전 세계에 각인된 그가, 이번에는 괴팍하지만 유머를 잃지 않는 천재 작가 달튼 트럼보로 완벽하게 변신했더라고요. 욕조에 몸을 담그고 담배와 위스키를 옆에 둔 채, 미친 듯이 타자기를 두드리는 그의 모습은 트럼보라는 인물의 상징적인 이미지가 되었어요. 그는 트럼보의 예민함, 천재성, 그리고 신념에 대한 고집스러운 면모를 정말 입체적으로 표현해냈어요. 때로는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는 독선적인 가장의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부당한 세상에 맞서는 예술가의 고뇌를 섬세하게 그려내며 관객들이 그의 편에 설 수밖에 없게 만들더라고요. 그의 연기 덕분에 우리는 2시간 동안 달튼 트럼보라는 한 인간의 삶에 깊이 몰입하고, 그의 승리와 좌절을 함께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할리우드 블랙리스트‘라는 시대적 배경을 조금 알아둘 필요가 있어요. 당시 미국은 소련과의 냉전 속에서 ‘레드 콤플렉스’, 즉 공산주의에 대한 극심한 공포와 편집증에 시달렸어요. 이 광기는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갔고, 특히 대중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는 할리우드는 주요 타겟이 되었죠. 영화 속에서 헬렌 미렌이 연기한 가십 칼럼니스트 ‘헤다 호퍼’는 바로 이 시대의 광기를 상징하는 인물이에요. 그녀는 자신의 칼럼을 무기 삼아 공산주의자로 의심되는 영화인들을 공격하고, 그들의 경력을 무참히 짓밟아버리죠. 영화는 이런 부당한 ‘마녀사냥’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지, 그리고 동료를 고발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극적인 상황들을 현실적으로 보여줘요. 단순히 한 사람의 전기 영화를 넘어,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그리고 그것이 억압당할 때 사회가 얼마나 병들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지점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보’가 마냥 무겁고 어둡기만 한 영화는 아니라는 점이 정말 좋았어요. 제이 로치 감독은 이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시종일관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아요. 트럼보가 여러 필명으로 B급 영화 공장을 돌리듯 시나리오를 써내는 장면들은 거의 코미디에 가까울 정도로 재미있게 그려져요. 특히 그가 쓴 두 개의 각본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나란히 후보에 오르고, 심지어 수상까지 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통쾌함마저 느끼게 하더라고요. 이런 유머러스한 접근 덕분에 관객들은 지치지 않고, 오히려 트럼보의 고군분투를 더 응원하게 되는 것 같아요.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결국 그의 ‘재능’과 ‘글’이었다는 점을 영화는 아주 영리하게 보여주고 있었어요.
주인공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도 인상 깊었어요. 특히 트럼보의 곁을 묵묵히 지키는 아내 클레오(다이앤 레인)의 존재는 정말 따뜻하게 다가왔어요. 남편의 고집과 독선적인 모습에 힘들어하면서도, 끝까지 그의 신념을 믿고 지지해주는 그녀의 모습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중심축이었어요. 모든 것을 잃고 예민해진 트럼보가 가족들에게 상처를 줄 때, 클레오가 그를 붙잡아주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 무너졌을지도 몰라요. 반면, 앞서 언급했던 헤다 호퍼(헬렌 미렌)는 짧은 등장만으로도 화면을 장악하는 엄청난 카리스마를 보여줘요. 우아한 옷차림과 부드러운 말투 뒤에 숨겨진, 신념을 가장한 잔혹함과 위선을 완벽하게 연기해서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답니다.
결국 영화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져요. ‘신념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트럼보는 동료들을 고발하고 안락한 삶을 이어갈 수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그 대가로 11년이라는 긴 세월을 이름 없이 살아야 했어요. 하지만 그는 결국 자신의 펜으로, 자신의 실력으로 스스로의 명예를 되찾았죠. 영화의 마지막, 그가 명예를 회복하며 남기는 연설은 이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명장면이라고 생각해요. 그 시대를 살았던 모두가 피해자였다고 말하며, 승자도 패자도 없음을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서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었어요. ‘트럼보’는 단순히 한 천재 작가의 인생을 조명하는 것을 넘어, 부당한 시대에 예술가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자신의 존엄을 지켜냈는지에 대한 감동적인 기록인 것 같아요.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옳은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큰 용기를 주는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