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리오(2015): 선과 악의 경계가 무너진 곳, 늑대들의 땅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영화 장면

이 장면을 보고 눈물이 났어요

오랜만에 집에 혼자 있는 주말, 뭘 볼까 고민하다가 이 영화를 선택했습니다. 보는 내내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영화가 끝났을 때는 이미 밤 12시가 넘어 있었지만, 후회는 전혀 없었습니다.

가끔은 영화 한 편이 심장을 쿵 하고 내려앉게 만들 때가 있어요. 단순한 재미나 감동을 넘어서, 마치 차가운 현실의 한복판에 맨몸으로 던져진 듯한 감각을 주는 영화들 말이에요. 제게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가 바로 그런 작품이었어요. 처음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을 때의 그 숨 막히는 압박감과 등줄기를 타고 흐르던 서늘함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가 않더라고요. 이건 그냥 잘 만든 범죄 스릴러가 아니에요. 이건 관객의 윤리관과 신념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리는, 아주 지독하고도 현실적인 악몽 같은 체험이었어요.

영화는 이상과 원칙을 굳게 믿는 FBI 요원, 케이트 메이서(에밀리 블런트)의 시선을 따라가요. 그녀는 아동 납치 사건 현장에서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고, 이 모든 비극의 배후에 있는 멕시코의 거대 마약 카르텔을 소탕하기 위한 작전에 자원하게 되죠. 하지만 그녀가 합류한 팀은 어딘가 이상해요. 샌들을 신고 농담이나 던지는, 능글맞아 보이는 CIA 책임자 맷(조슈 브롤린)과, 과거도 정체도 불분명하지만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얼어붙게 만드는 의문의 남자 알레한드로(베니시오 델 토로). 이 둘과 함께하면서 케이트는 자신이 믿어왔던 ‘법의 테두리 안에서의 정의’가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를 처절하게 깨닫게 돼요. 영화는 이 순진한 이상주의자가 어떻게 무법지대의 현실, 즉 ‘늑대들의 땅’에서 자신의 신념이 부서져 내리는지를 아주 냉정하고 집요하게 보여주더라고요.

영화 장면

이 영상미에 완전히 반했습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연출은 정말이지 ‘미쳤다’는 말밖에는 안 나와요. 그는 관객의 숨통을 서서히, 그리고 아주 확실하게 조여오는 방법을 아는 것 같아요. 특히 영화의 백미로 꼽히는 국경지대 총격 장면을 떠올려보세요. 멕시코 후아레즈에서 타겟을 미국으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차들이 꽉 막힌 도로 위에서 벌어지는 그 장면 말이에요. 대사 한 마디 없이, 오직 차량 행렬의 움직임, 인물들의 긴장된 표정, 그리고 심장을 쿵쿵 울리는 요한 요한손의 음악만으로 그는 극도의 서스펜스를 만들어내요.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함께 차에 갇혀 있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액션이 화려해서가 아니라, 그 상황이 주는 압도적인 현실감과 공포 때문에 손에 땀을 쥐게 되는 거죠. 이런 게 바로 진짜 ‘연출의 힘’이 아닐까 싶어요.

이 영화의 압도적인 분위기는 로저 디킨스의 카메라와 요한 요한손의 음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로저 디킨스는 삭막하고 광활한 멕시코의 사막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그 자체로 희망이 증발해버린 무법의 공간으로 담아냈어요. 특히 해 질 녘의 실루엣이나, 야간 투시경, 열화상 카메라를 통해 보여주는 장면들은 비현실적이면서도 소름 끼치게 현실적으로 다가왔어요. 요한 요한손의 음악은 또 어떤가요. ‘음악’이라기보다는 ‘소리’에 가까운, 땅 밑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듯한 웅장하고 불길한 저음은 영화 내내 불안과 공포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어요. 이 사운드가 없었다면 ‘시카리오’의 긴장감은 절반으로 줄었을지도 몰라요. 안타깝게도 이제는 그의 새로운 음악을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프네요.

배우들의 연기는 그야말로 신들린 경지였어요. 에밀리 블런트는 이 혼돈 속에서 유일하게 관객이 감정적으로 기댈 수 있는 인물, 케이트를 완벽하게 연기했어요. 정의감에 불타던 눈빛이 점차 공포와 혼란, 그리고 절망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그녀의 시선을 통해 관객은 이 비정한 세계를 체험하고 함께 고뇌하게 되는 거죠. 조슈 브롤린이 연기한 맷은 이 지옥도에서 유일하게 여유를 부리는 인물인데, 그 가벼움이 오히려 상황의 비정상성을 더욱 강조하는 효과를 줘요. 그의 농담 뒤에 숨겨진 냉혹함은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였어요.

그리고… 베니시오 델 토로의 알레한드로. 이 영화는 어쩌면 알레한드로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몰라요. 그는 말이 거의 없어요. 하지만 그의 존재감은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도 남아요. 깊은 슬픔과 분노, 그리고 복수심이 뒤섞인 듯한 그의 눈빛은 수많은 대사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았어요. 그가 왜 이 작전에 합류했는지, 그의 목표가 무엇인지가 서서히 드러날 때, 관객은 케이트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충격과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게 돼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잣대로는 도저히 평가할 수 없는 인물, 그가 바로 ‘시카리오’의 심장 그 자체인 것 같아요. 그의 마지막 선택과 대사는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결국 ‘시카리오’는 우리에게 아주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예요. ‘괴물을 잡기 위해 우리도 괴물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아주 오래된 질문 말이죠. 영화는 결코 쉬운 답을 주지 않아요. 오히려 ‘이곳은 늑대들의 땅이고, 살아남으려면 너도 늑대가 되어야 한다’는 냉혹한 현실을 그저 보여줄 뿐이에요. 케이트가 마지막에 겪게 되는 무력감과 환멸은 어쩌면 이 거대한 악의 시스템 앞에서 개인의 정의가 얼마나 하찮게 부서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고요.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 안도감보다는 깊은 침묵과 함께 묵직한 무언가가 가슴을 짓누르는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단순한 오락 영화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지만, 진짜 어른들을 위한,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스릴러를 원하신다면 이 영화는 절대 놓쳐서는 안 될 필견의 명작이라고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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