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가을, 그리고 오후 5시부터 7시까지의 우리 | 영화 ‘5 to 7’ 감성 리뷰

영화 장면

영화의 백미는 바로 이 순간이었습니다

어제 밤 잠이 안 와서 이 영화를 다시 봤습니다. 처음 봤을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 밀려왔어요. 영화가 끝나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문득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더라고요.

가을이 깊어지면 유독 생각나는 영화들이 있는 것 같아요. 왠지 모르게 스산한 공기와 따스한 햇살, 그리고 흩날리는 낙엽의 색을 닮은 그런 이야기들 말이에요. 저에게 영화 ‘5 to 7’은 바로 그런, 가을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듯한 영화로 기억되고 있어요. 뉴욕의 가을 풍경 속에서 펼쳐지는, 조금은 특별하고 아슬아슬한 사랑 이야기를 보고 나면, 사랑의 형태에 대해 한참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영화는 젊고 재능있는 작가 지망생 브라이언으로 시작해요. 매일같이 출판사로부터 거절의 편지를 받지만, 언젠가 뉴요커에 자신의 글이 실릴 거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 청년이죠. 풋풋하고 조금은 서툴지만, 세상과 사랑에 대한 자신만의 낭만을 간직한 인물이에요. 이제는 우리 곁을 떠난 배우 안톤 옐친이 연기한 브라이언은, 그의 선한 눈망울과 섬세한 표정 덕분에 더 깊이 마음에 와닿았던 것 같아요. 그가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한 여인, 아리엘에게 첫눈에 반하면서 이 특별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아리엘은 브라이언과는 정반대의 세계에 있는 사람처럼 보여요. 프랑스 대사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그녀는 우아하고 지적이며, 세상의 모든 풍파를 겪어본 듯한 여유로움을 지녔죠. 브라이언의 저돌적인 구애에 그녀는 흥미로운 제안을 하나 해요. 바로 ‘오후 5시부터 7시까지’만 연인이 되자는 것이었죠. 프랑스에서는 흔한 ‘5-à-7(생카세트)’ 문화라면서요. 배우자가 있지만,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하며 정해진 시간 동안 자신만의 사랑을 나누는 것. 처음에는 이 비현실적인 규칙이 너무나 낯설고 이기적으로 느껴졌어요. 이게 과연 사랑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죠.

영화 장면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 독특한 규칙을 단순한 불륜으로 치부하지 않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따라가요. 5시가 되면 마법처럼 시작되는 그들의 데이트는 뉴욕의 가장 아름다운 장소들을 배경으로 펼쳐져요. 센트럴 파크의 가을볕 아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서로의 예술적 취향을 공유하고, 오래된 서점에서 서로에게 책을 추천해주죠. 이 장면들은 마치 한 편의 뉴욕 여행 화보를 보는 것처럼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들의 관계가 가진 비극성을 잠시 잊게 만들 정도였어요. 뉴욕이라는 도시 자체가 이들의 사랑을 응원하는 또 하나의 주인공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브라이언과 아리엘은 두 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누구보다 깊은 교감을 나눠요. 브라이언은 아리엘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배우고 작가로서 성장하게 되고, 아리엘은 브라이언의 순수한 열정 속에서 잊고 있던 설렘을 되찾죠. 서로에게 완벽한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되어가는 거예요. 특히 브라이언의 부모님 캐릭터가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아들이 유부녀와 만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의 반응이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것과는 전혀 달랐거든요. 충격과 분노보다는, 아들의 사랑을 하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그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 따뜻하고 유쾌했어요. 어쩌면 감독은 이 부모님의 모습을 통해 ‘정해진 틀’을 벗어난 사랑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하지만 ‘7시’라는 마법이 풀리는 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와요. 브라이언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두 시간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순간들이 찾아오죠. 그는 그녀의 온전한 삶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하고, 이 정해진 규칙은 점점 그를 옭아매는 족쇄처럼 느껴지기 시작해요. 여기서부터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의 달콤함을 넘어 현실적인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사랑이 과연 시간과 규칙 안에 머무를 수 있는 감정일까? 한 사람을 온전히 소유하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을까? 아리엘의 남편까지 등장하면서 그들의 관계는 더욱 복잡한 국면으로 접어들어요.

결말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의 의견이 갈릴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는 안타까운 새드엔딩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장 현실적이고 아름다운 마무리로 느껴질 수도 있겠죠. 저는 이 영화의 엔딩이 참 좋았어요. 모든 사랑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야만 의미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때로는 가장 찬란했던 순간의 기억만으로도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거든요. 마지막 장면에서 브라이언이 아리엘을 바라보는 그 눈빛은, 단순히 지나간 연인을 향한 아쉬움이 아니었어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해준 사람에 대한 깊은 감사와 존중이 담겨 있었죠. 그래서 더 먹먹하고 여운이 길게 남았던 것 같아요.

‘5 to 7’은 단순히 파격적인 소재를 다룬 로맨스 영화가 아니에요. 사랑의 본질과 관계의 다양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잘 쓰인 한 편의 단편소설 같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아름다운 영상미와 감미로운 음악, 그리고 두 배우의 환상적인 케미가 어우러져 보는 내내 눈과 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요. 만약 정해진 틀을 벗어난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에 목마르셨다면, 혹은 뉴욕의 가을 속으로 잠시 떠나고 싶으시다면, 이 영화를 조심스럽게 추천해 드리고 싶네요. 아마 영화가 끝나고 난 뒤, 여러분만의 ‘이야기’에 대해 한참을 생각하게 되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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