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입니다
친구가 추천해줘서 반신반의하며 본 영화였는데, 완전히 제 마음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몇 시간 동안 계속 생각이 났어요. 이런 영화는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데일리 무비입니다. 가끔 그런 영화가 있는 것 같아요. 보고 나면 마음이 너무 아리고 힘들어서 한동안 멍해지는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문득 다시 생각나고 곱씹게 되는 영화 말이에요. 오늘 이야기할 마이크 피기스 감독의 ‘라스베가스를 떠나며‘가 저에겐 바로 그런 영화랍니다. 1995년 작이니 벌써 30년 가까이 된 고전이지만, 니콜라스 케이지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그 전설적인 연기만으로도 이 영화는 영원히 기억될 가치가 충분한 것 같아요. 화려한 도시 라스베가스를 배경으로, 가장 어둡고 절망적인 두 영혼이 나누는 사랑 이야기는 어쩌면 사랑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을 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묵직한 질문을 던지게 하더라고요.
영화의 시작은 할리우드에서 잘나가던 시나리오 작가였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잃은 남자, 벤의 모습에서부터 출발해요. 그는 가족도, 직업도, 삶의 의지마저도 모두 잃고 오직 술에만 의존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아니 스러져가는 중증 알코올 중독자입니다. 그런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은 바로 ‘죽음’이었어요. 그냥 죽는 게 아니라,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술을 원 없이 마시다가 죽겠다는 결심을 하고 모든 재산을 정리해 라스베가스로 향하죠. 희망과 욕망이 네온사인처럼 번쩍이는 도시에서, 그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생을 마감하기 위한 마지막 여정을 시작한 거예요. 바로 그곳에서 그는 또 다른 상처 입은 영혼, 세라를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포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리의 여자예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은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서로에게 이상하게 끌리게 됩니다.
이 영화의 심장은 단연코 벤을 연기한 니콜라스 케이지의 연기에 있어요. 우리가 흔히 ‘술 취한 연기’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그야말로 영혼을 갈아 넣은 연기라고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더라고요. 단순히 비틀거리고 혀 꼬인 소리를 내는 수준이 아니에요. 알코올에 뇌가 잠식당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미세한 손 떨림, 순간순간 찾아오는 고통스러운 금단 현상, 그리고 그 와중에도 잠시 맑은 정신이 돌아왔을 때의 그 공허하고 슬픈 눈빛까지. 그는 ‘벤’이라는 인물 그 자체가 되어버린 듯했어요.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술을 사기 위해 슈퍼마켓 카트를 끌고 위스키와 보드카를 쓸어 담는 모습이에요. 마치 생필품을 쇼핑하듯, 생존을 위해 술을 담는 그의 모습은 처절하면서도 너무나 슬퍼서 보는 내내 가슴이 저며왔어요. 그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지만, 그 과정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아요. 오히려 한 인간이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져 내릴 수 있는지를 스크린을 통해 고통스럽게 체험하게 만들죠.
니콜라스 케이지의 연기가 너무나 강렬해서 자칫 가려질 수도 있지만, 세라를 연기한 엘리자베스 슈의 연기 또한 정말 대단했어요. 그녀가 연기한 세라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백치미 넘치는 창녀’나 ‘가련한 피해자’의 틀에 갇혀있지 않아요. 그녀 역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강인함과 연약함을 동시에 지닌 복합적인 인물이죠. 자신을 착취하는 포주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이 남자를 그냥 내버려 두지 못해요. 그녀가 벤에게 느끼는 감정은 동정심이나 모성애와는 조금 다른, 뭐랄까, 영혼의 동질감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세상의 끝자락에 내몰린 두 사람이 서로의 존재를 통해 아주 잠시나마 위로를 얻는 거죠. 특히 그녀가 벤을 향해 던지는 대사들, ‘당신이 술 마시는 걸 멈추게 하려 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이들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부분이었어요.

이 장면에서 정말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사랑은 참으로 기묘하고 특별하게 다가왔어요. 보통의 로맨스 영화라면 한쪽이 다른 한쪽을 구원하려는 시도를 하잖아요. ‘내가 당신을 이 지옥에서 꺼내줄게’ 라면서요. 하지만 벤과 세라는 서로를 바꾸려 하지 않아요. 벤은 세라에게 더 이상 몸을 팔지 말라고 강요하지 않고, 세라는 벤에게 술을 끊으라고 애원하지 않죠. 그들은 그저 상대방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그 절망과 자기 파괴적인 모습까지도 온전히 받아들이고 서로의 마지막을 ‘목격’해주기로 합니다. 이게 과연 사랑일까? 아니면 지독한 현실 도피나 자기 연민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분명한 건, 서로에게 어떤 조건도 달지 않고 존재 자체를 인정해주는 그들의 관계가 어쩌면 우리가 좇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에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들의 사랑은 구원이 아니라, 서로의 고통을 묵묵히 지켜봐 주는 연대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마이크 피기스 감독의 연출 방식도 이 영화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어요. 그는 의도적으로 16mm 필름을 사용해서 화면에 거칠고 불안정한 질감을 더했는데요, 이는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현실감을 주면서 동시에 인물들의 위태로운 내면을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표현해냈어요. 화려함의 대명사인 라스베가스의 네온사인이 이 영화에서는 더없이 공허하고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런 연출 덕분인 것 같아요. 반짝이는 불빛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환희와 욕망을 불태우지만 벤과 세라의 공간은 철저히 고립되어 있죠. 그들의 사랑은 그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 가려진, 가장 어둡고 깊은 곳에서 피어나는 슬픈 꽃 같았어요. 감독은 결코 이들의 관계를 미화하거나 감상적으로 포장하지 않고, 건조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끝까지 따라갑니다.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음악이에요. 스팅(Sting)이 부른 재즈 풍의 OST와 마이크 피기스 감독이 직접 작곡한 스코어는 영화 전반에 흐르는 블루지하고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완성하죠. 특히 스팅의 목소리로 흐르는 ‘Angel Eyes’나 ‘My One and Only Love’ 같은 곡들은 벤과 세라의 위태로운 사랑을 대변하는 듯해서 더욱 가슴에 와 닿았어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벤의 모습 위로 흐르는 구슬픈 색소폰 연주는 마치 그의 영혼이 내지르는 비명처럼 들리기도 했고요. 시각적인 것뿐만 아니라 청각적으로도 관객을 영화의 감정선에 깊이 몰입시키는,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한동안 그 재즈 선율이 귓가에 맴돌 정도였으니까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는 결코 유쾌하거나 희망적인 영화는 아니에요. 오히려 보고 나면 마음이 무거워지고 깊은 우울감에 빠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 외로움, 그리고 사랑의 본질에 대해 아주 깊은 성찰을 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작품인 것 같아요. 모든 희망을 버린 한 남자가 자신의 마지막을 함께해 줄 단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 그리고 그 마지막을 온전히 지켜봐 준다는 것.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한 인생은 구원받을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더라고요. 쉽게 추천하기는 어려운 영화지만, 삶과 사랑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를 찾으신다면, 그리고 배우의 신들린 연기가 무엇인지 직접 확인하고 싶으시다면, 이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마지막 여정을 꼭 한번 함께 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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