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 그런 영화가 있는 것 같아요. 처음 봤을 때의 감동이 너무 커서,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영화요. 제게는 ‘굿 윌 헌팅’이 바로 그런 영화 중 하나예요. 얼마 전, 왠지 모르게 마음이 좀 허전한 날 밤에 정말 오랜만에 이 영화를 다시 꺼내 봤어요. 그리고 다시 한번 깨달았죠. 좋은 영화는 시간이 지나도 바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 삶의 경험과 맞물려 더 깊은 울림을 준다는 걸요.
이 영화의 주인공 ‘윌 헌팅’은 정말 특별한 친구예요. MIT에서 청소부로 일하지만, 세상 그 누구도 풀지 못하는 수학 문제를 칠판에 낙서처럼 끄적여 풀어버리는 천재죠. 수학뿐만 아니라 역사, 법학, 뭐든 책 한 번 보면 통달해버리는, 그야말로 신이 내린 재능을 가졌어요. 하지만 그의 현실은 어떨까요? 보스턴 남쪽의 가난한 동네에서, 어릴 적 받은 깊은 상처를 가슴에 묻은 채, 유일한 안식처인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보내는 반항아일 뿐이에요. 그의 천재성은 마치 단단한 껍질 속에 숨겨진 보석 같아서, 누구에게도 쉽사리 그 빛을 보여주지 않아요. 오히려 그 빛을 무기 삼아 세상을 조롱하고 사람들을 밀어내기 바쁘죠. 맷 데이먼이 연기한 젊은 시절의 윌은 그 불안하고 날카로운 눈빛,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찬 표정만으로도 ‘이 사람, 참 많은 사연을 가졌구나’ 하는 걸 느끼게 만들더라고요.
그런 윌의 재능을 우연히 발견한 사람이 바로 MIT의 수학과 교수, 제럴드 램보예요. 램보 교수는 윌을 어떻게든 세상 밖으로 끌어내 위대한 수학자로 만들고 싶어 하죠. 하지만 윌은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누구의 도움도 거부해요. 폭행 사건으로 감옥에 갈 위기에 처하자, 램보 교수는 한 가지 조건을 내걸어요. 자신과 수학 공부를 하고, 심리 상담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그를 꺼내주겠다고요. 그렇게 윌은 마지못해 여러 심리학자를 만나지만, 특유의 천재성으로 오히려 의사들을 농락하며 상담을 파투 내기 일쑤였어요. 바로 그때, 램보 교수가 마지막 희망처럼 찾아간 사람이 있었으니, 그의 대학 동기이자 지금은 동네 대학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는 ‘숀 맥과이어’ 교수예요.
숀과 윌의 첫 만남은 그야말로 불꽃 튀는 탐색전이었어요. 윌은 숀의 서재에 걸린 그림 한 점을 보고 그의 아픈 과거와 상처를 날카롭게 파고들며 공격하죠. 하지만 숀은 다른 의사들처럼 당황하거나 화를 내지 않아요. 오히려 윌의 허세를 꿰뚫어 보고, 그 역시 책으로만 세상을 배운 ‘어린애’일 뿐이라고 일침을 가하죠. 이 만남을 시작으로, 둘 사이에는 아주 특별한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어요. 숀은 윌을 환자로 대하지 않았어요. 가르치려 들거나 분석하려 하지도 않았죠. 그저 같은 상처를 가진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윌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어요. 호숫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침묵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던 그 장면은, 수많은 명대사보다 더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 같아요. 진정한 소통은 화려한 말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마침내, 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그 장면이 등장해요. 윌이 어린 시절 겪었던 끔찍한 학대의 상처를 고백하자, 숀은 그저 조용히, 그리고 단호하게 반복해서 말해주죠. ‘It’s not your fault.’ (네 잘못이 아니야.) 처음에는 ‘알아요’라며 애써 외면하던 윌은, 숀이 다가와 자신을 끌어안고 계속해서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속삭여주자 결국 무너져내려요. 평생을 짓누르던 죄책감과 수치심의 둑이 터지듯 오열하는 윌을 보고 있으면, 스크린을 보고 있는 저까지도 함께 위로받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우리 모두에겐 크고 작은 상처가 있고, 때로는 스스로를 탓하며 살아갈 때가 많잖아요. 그럴 때 누군가 진심으로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것만큼 큰 위로가 또 있을까요. 이제는 고인이 된 로빈 윌리엄스의 그 따뜻하고 인자한 눈빛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이 영화는 그가 남긴 가장 따뜻한 선물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이 영화가 단순히 한 천재의 성장통과 치유 과정만을 다뤘다면 이토록 큰 사랑을 받진 못했을 거예요. ‘굿 윌 헌팅’의 또 다른 축은 바로 윌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이에요. 특히 벤 애플렉이 연기한 절친 ‘처키’의 존재는 정말 눈부셔요. 그는 윌의 천재성을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아요. 오히려 윌이 평생 자신들처럼 막노동이나 하며 재능을 썩히는 것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하죠. 어느 날 아침, 윌을 데리러 온 처키가 ‘넌 우리와는 달라. 넌 로또 복권에 당첨된 거나 마찬가지인데, 그걸 긁어볼 용기도 없이 버리고 있는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은, 친구를 향한 진정한 사랑과 응원이 무엇인지 보여줘요. 내 곁을 떠나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 그게 진짜 우정이겠죠. 또한, 윌이 사랑에 빠지는 ‘스카일라’라는 인물도 중요해요. 그녀는 윌의 천재성이나 불우한 과거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윌’을 사랑해주고 그에게 처음으로 마음을 열게 만드는 존재니까요. 그녀를 통해 윌은 비로소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자신의 가장 깊은 두려움과 마주하게 되죠.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연출은 화려하진 않지만, 인물들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따라가며 깊은 몰입감을 줘요. 특히 보스턴의 소박하고 사실적인 풍경은 영화의 분위기와 너무나도 잘 어울렸어요. 그리고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엘리엇 스미스의 음악을 빼놓을 수 없겠죠. 그의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기타 선율과 나지막이 읊조리는 목소리는 마치 윌의 내면을 대변하는 것 같았어요. 특히 ‘Miss Misery’가 흘러나오던 엔딩 장면은, 새로운 시작을 향해 차를 몰고 떠나는 윌의 미래를 축복해주는 듯한 느낌이라 더욱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굿 윌 헌팅’은 결국 선택에 관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안전한 불행과 불확실한 행복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윌은 오랫동안 자신의 상처 뒤에 숨어 세상을 거부하는 ‘안전한 불행’을 택했어요. 하지만 숀과 처키, 그리고 스카일라를 통해 그는 용기를 얻죠.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나를 규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용기, 상처받을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갈 용기, 그리고 자신의 재능을 펼치러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용기 말이에요.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 것 같아요. 당신은 당신의 삶에서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그리고 그것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고요. 혹시 지금 삶이 조금 버겁고, 나아갈 길을 잃은 것 같아 위로가 필요한 분이 있다면, 이 영화를 조심스럽게 추천해 드립니다. 숀 교수가 건네는 따뜻한 위로가, 분명 당신의 마음에도 가 닿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