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은 정말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인생 영화를 만나곤 하죠. 저에게 ‘쓰리 킹즈’가 바로 그런 영화였어요. 1999년 작이니 벌써 20년도 훌쩍 넘은 영화인데, 지금 다시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오히려 지금의 시선으로 볼 때 더 날카롭게 다가오는 지점들이 있더라고요. 처음엔 포스터 속 조지 클루니의 멋진 모습과 ‘액션, 코미디, 전쟁’이라는 장르 소개만 보고 가벼운 오락 영화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한동안 멍하니 스크린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어요. 이건 단순한 전쟁 액션 코미디가 아니었어요. 그보다 훨씬 깊고, 뜨거우며, 때로는 아프기까지 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아주 특별한 영화였답니다.
영화의 배경은 걸프전이 막바지에 이른 1991년의 이라크예요. 공식적인 종전 선언으로 총성은 멎었지만, 병사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사막 한가운데서 무료하고 의미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죠. 바로 그때, 아주 우연한 계기로 이라크 포로의 몸속에서 지도를 하나 발견하게 돼요. 그 지도에는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에서 약탈한 막대한 양의 황금이 숨겨진 벙커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어요. 이 엄청난 정보 앞에 네 명의 군인이 뭉칩니다. 제대를 앞두고 인생 역전을 꿈꾸는 특전사 소령 아치 게이츠(조지 클루니), 갓 아빠가 된 애국심 넘치는 원칙주의자 하사 트로이 발로(마크 월버그), 독실한 신념을 가진 치프 엘진(아이스 큐브), 그리고 어딘가 어리숙하지만 순수한 신병 콘래드(스파이크 존즈)까지. 이들은 군의 감시를 피해 비밀리에 황금을 손에 넣으려는 위험천만한 작전을 시작해요. 처음엔 그저 일확천금의 꿈에 부풀어 있던 이들의 여정은, 황금을 향해 다가갈수록 예상치 못한 사람들과 사건들을 마주하며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하더라고요.

이 영화가 정말 특별하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의 독창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연출 스타일 때문인 것 같아요. 그는 전쟁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기존의 문법을 따르지 않아요. 채도를 확 빼버린 듯한, 거칠고 탈색된 듯한 화면(이게 ‘블리치 바이패스’라는 기법이라고 하더라고요)은 이라크 사막의 뜨거운 공기와 전쟁의 황폐함을 스크린 너머로까지 생생하게 전달해줘요. 특히 총알이 인체에 박히는 순간을 해부학 도면처럼 내부에서 보여주는 장면이나, 정신없이 흔들리는 핸드헬드 카메라로 혼란스러운 전장의 상황을 그대로 담아내는 방식은 관객이 마치 그 현장 한가운데 있는 듯한 몰입감을 주더라고요. 유쾌하고 코믹한 장면과 전쟁의 참혹하고 잔인한 현실을 아무렇지 않게 오가는 이 변칙적인 리듬감이야말로 ‘쓰리 킹즈’만의 독보적인 매력인 것 같아요. 그 덕분에 우리는 단순히 웃고 즐기는 것을 넘어,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이 만들어내는 부조리함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고요.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은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웠어요. 능글맞고 세속적인 듯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부하들을 챙기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조지 클루니의 모습은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그가 연기한 아치 게이츠는 처음엔 돈밖에 모르는 냉소적인 군인이었지만, 이라크 사람들의 현실을 마주하며 점차 인간적인 고뇌에 빠지는 모습을 정말 설득력 있게 보여줬어요. 마크 월버그는 고지식할 정도로 원칙을 중시하지만 마음속엔 누구보다 뜨거운 정의감을 품고 있는 트로이 발로 역을 맡아,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점차 성장해나가는 캐릭터의 변화를 드라마틱하게 그려냈죠. 아이스 큐브 역시 신앙과 현실, 그리고 전우애 사이에서 갈등하는 치프 엘진의 내면을 깊이 있게 연기했어요. 특히 제가 놀랐던 건, 지금은 ‘그녀(Her)’ 같은 영화를 만든 명감독이 된 스파이크 존즈의 풋풋한 연기였어요. 남부 출신의 어리바리하고 순수한 시골 청년 콘래드 역을 맡아 극의 활력과 동시에 비극성을 불어넣는 중요한 역할을 아주 훌륭하게 해내더라고요. 이 네 명의 케미스트리가 어찌나 좋은지, 정말 오랫동안 함께해온 한 팀처럼 느껴질 정도였어요.
앞서 말했듯, ‘쓰리 킹즈’는 한 가지 장르로 규정하기 힘든 영화예요. 초반부는 분명히 금괴를 훔치기 위해 작전을 짜고,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 허둥대는 모습을 보여주는 유쾌한 ‘케이퍼 무비’의 공식을 따라가요. 하지만 주인공들이 황금이 숨겨진 마을에 도착하면서부터 영화의 분위기는 180도 바뀝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후세인 정권에 저항하다가 가족을 잃고, 미국의 비호 약속만 믿고 봉기했다가 버림받아 죽음의 위협에 내몰린 이라크 반군과 난민들의 처참한 현실을 직접 목격하게 되죠. 코미디는 어느새 사라지고, 그 자리를 전쟁의 비극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묵직한 질문이 채우기 시작해요. 웃음과 긴장감, 그리고 가슴 아픈 드라마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하나의 이야기로 어우러질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독의 연출력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되더라고요.
결국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황금’이라는 물질적 욕망을 쫓던 주인공들이 어떻게 ‘사람’이라는 그보다 훨씬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게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처음엔 그저 돈에 눈이 멀었던 이기적인 군인들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비인간적인 참상을 외면하지 못하고 결국 자신들의 목숨과 황금을 걸고 난민들을 돕기 위해 나서게 되거든요. 이는 단순히 몇몇 군인들의 영웅적인 행동에 대한 찬사를 넘어, 당시 걸프전에 대한 미국의 모순적인 태도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으로 확장돼요. ‘이라크 해방’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전쟁을 시작했지만, 정작 독재 정권 아래서 신음하며 도움이 필요했던 사람들은 철저히 외면했던 강대국의 위선을 영화는 정면으로 꼬집고 있었어요. 극중 아치 게이츠가 내뱉는 ‘가장 중요한 건 뭐지? 사람이 사람을 돕는 거.’라는 대사는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빛나는 핵심 메시지라고 생각해요.
영화의 사운드트랙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포인트예요. 90년대 힙합부터 클래식, 록 음악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선곡이 영화의 예측 불가능한 분위기를 한껏 살려주거든요. 유쾌한 작전 장면에서는 신나는 음악이, 긴박한 총격전에서는 심장을 조이는 음악이 깔리면서 관객의 감정을 쥐락펴락해요. ‘쓰리 킹즈’는 만약 여러분이 단순한 킬링타임용 액션 영화를 기대하고 보신다면 조금 당황스러울 수도 있는 영화예요. 하지만 재치 넘치는 블랙 코미디와 강렬하고 사실적인 액션,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는 뜨거운 휴머니즘의 완벽한 조화를 경험하고 싶으시다면, 이 영화는 정말 최고의 선택이 될 거라고 확신해요. 황금을 찾으러 떠났다가 그보다 더 소중하고 반짝이는 것을 발견한 세 남자, 아니 네 남자의 이야기.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제 마음속에 깊은 울림과 질문을 남기는 영화랍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꼭 한번 찾아보시길 강력하게 추천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