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 그런 날이 있잖아요. 문득 거울을 봤는데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들었나 싶고, 요즘 젊은 친구들이 쓰는 말이나 유행은 하나도 모르겠고, 어쩐지 나만 뒤처지는 기분이 드는 날. 저도 얼마 전에 친구들과 모여서 이야기하다가 ‘우리도 이제 진짜 어른이구나’ 하는 생각에 괜히 마음이 헛헛해지더라고요. 바로 그럴 때, 마치 내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것처럼 다가온 영화가 바로 노아 바움백 감독의 ‘위아영(While We’re Young)’이었어요. 이 영화는 단순히 ‘젊음은 좋고 늙음은 서글프다’ 같은 뻔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가 아니에요. 오히려 젊음을 향한 우리의 동경이 얼마나 허상에 가까운지, 그리고 세대 간의 미묘한 신경전을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유머러스하게 그려내서 보는 내내 웃다가도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경험을 하게 만들더라고요.
영화의 주인공은 40대 중반의 다큐멘터리 감독 조쉬(벤 스틸러)와 그의 아내 코넬리아(나오미 왓츠)예요. 두 사람은 뉴욕에서 나름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어딘가 모르게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죠. 주변 친구들은 모두 아이를 낳고 육아에 정신없는 평범한 중년의 삶으로 접어들었는데, 두 사람은 아이 없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좋을 것도 없는, 그런 권태로운 일상 속에서 이들은 자신들이 더 이상 ‘젊지 않다’는 사실을 매 순간 깨닫게 돼요. 새로운 기술보다는 익숙한 것을 선호하고, 밤새 파티를 즐기기보다는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게 편해진 자신들의 모습에서 씁쓸함을 느끼는 거죠. 바로 그때, 운명처럼 20대 힙스터 커플, 제이미(아담 드라이버)와 다비(아만다 사이프리드)가 그들의 삶에 불쑥 나타납니다.

제이미와 다비는 조쉬 커플과는 모든 면에서 정반대인 사람들이에요. 스마트폰 대신 직접 만든 가구를 소중히 여기고, 스트리밍 서비스 대신 LP판으로 음악을 들으며, 모든 순간을 즉흥적이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죠. 조쉬는 자신을 존경한다고 말하는 패기 넘치는 젊은 감독 제이미에게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고, 코넬리아 역시 생기 넘치는 다비와 어울리며 잊고 있던 활기를 되찾아요. 이 네 사람이 함께 어울리는 장면들은 정말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어요. 40대 커플이 20대의 유행을 따라 하려고 애쓰는 모습, 예를 들어 갑자기 페도라를 쓰고 자전거를 타거나, 잘 알지도 못하는 주술 의식에 참여하는 모습들은 정말 배꼽을 잡게 만들더라고요. 벤 스틸러 특유의 어색하면서도 짠한 코미디 연기가 빛을 발하는 순간들이었죠. 마치 잃어버린 청춘을 되찾은 듯, 이들은 잠시나마 달콤한 환상에 젖어들어요. 제이미 커플과 함께 있으면 자신들도 다시 젊고 ‘힙’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는 거죠.
하지만 이 유쾌한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아요. 영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의 관계에 드리워진 미묘한 균열을 집요하게 파고들기 시작합니다. 조쉬는 처음에는 제이미의 자유분방함과 예술가적 열정을 동경했지만, 점차 그의 ‘진정성’에 의문을 품게 돼요. 제이미가 보여주는 모든 쿨한 모습들, 예를 들어 일부러 낡은 타자기를 쓰고 희귀한 LP판을 모으는 행위들이 정말 순수한 취향이 아니라,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계산된 ‘콘셉트’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싹트는 거죠. 특히 제이미가 만들고 있는 다큐멘터리 작업에 조쉬가 얽히게 되면서, 둘 사이의 관계는 존경하는 선배와 후배에서 점차 경쟁자, 혹은 이용하는 자와 이용당하는 자의 관계로 변질되기 시작해요. 여기서부터 영화는 단순한 세대 차이 코미디를 넘어, ‘진정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미스터리 드라마로 전환됩니다. 아담 드라이버가 연기하는 제이미라는 캐릭터는 정말 매력적이면서도 동시에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라, 보는 사람마저 조쉬의 시선에 이입해서 ‘저 친구, 진짜 의도가 뭘까?’ 하고 계속해서 곱씹게 만들더라고요.
노아 바움백 감독은 이런 인물들 간의 심리 변화를 정말 기가 막히게 포착해내는 것 같아요. 그의 영화들이 늘 그렇듯, ‘위아영’ 역시 재치 넘치는 대사들로 가득 차 있어요.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마치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듣는 기분이 들 정도예요. 예를 들어, 조쉬가 ‘요즘 애들은 다 아는 척하지만 사실 아는 건 하나도 없어’라고 투덜거리면서도, 정작 제이미가 쓰는 단어의 뜻을 몰래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는 장면은 정말 공감성 수치를 느끼게 하면서도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만들었죠. 감독은 어느 한쪽 세대의 편을 들지 않아요. 젊음을 잃어버릴까 봐 불안해하며 섣불리 젊은 세대를 모방하려는 40대의 조급함도, 진정성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야망을 포장하는 20대의 영악함도 공평한 시선으로 꼬집고 있거든요. 결국 영화는 우리에게 ‘진짜 젊음’이란 나이나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만의 것을 솔직하게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의 문제라는 걸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어요.
배우들의 연기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훌륭했어요. 벤 스틸러는 성공한 예술가로서의 자존심과 새로운 세대에 대한 열등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중년 남성의 복잡한 심리를 완벽하게 표현해냈고요, 나오미 왓츠는 남편의 방황을 지켜보면서도 자신만의 중심을 찾아가는 코넬리아의 성장을 차분하게 그려냈어요.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많은 분들이 아마 아담 드라이버라는 배우에게 완전히 매료될 거라고 확신해요. 사람을 끌어당기는 카리스마와 어딘가 모르게 음흉한 구석을 동시에 가진 제이미라는 캐릭터는 그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입체적으로 살아나지 못했을 거예요. 그의 연기 덕분에 영화의 긴장감이 마지막까지 팽팽하게 유지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결론적으로 ‘위아영’은 유쾌한 코미디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안에는 세대, 진정성, 그리고 나이 듦에 대한 날카롭고도 씁쓸한 성찰이 담겨 있는 영화였어요. 만약 여러분도 저처럼 가끔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느낀다면, 혹은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것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다면 이 영화가 큰 공감과 함께 생각할 거리를 안겨줄 거라고 생각해요. 젊음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힙’한 삶의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조금은 위로가 되는 메시지를 얻어갈 수 있을 거예요. 웃음과 씁쓸함이 공존하는, 아주 잘 만들어진 어른들의 성장 영화로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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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밍: Watcha, TVING / 대여/구매: wav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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