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택트(Arrival, 2016): 시간을 이해하는 순간, 삶의 모든 것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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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정말 아무런 정보 없이, 그냥 마음에 이끌려 영화를 보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제게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가 바로 그런 영화였어요. 처음 이 영화를 만났을 땐 그저 ‘외계인이 나오는 SF 영화’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엔 자리를 뜰 수가 없더라고요.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듯한 충격과 함께, 가슴 한편이 먹먹해지는 그런 기분이었죠.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 다시 봐도 그 여운은 여전하네요. 오히려 시간이 지나고 제 삶의 경험이 더해지니,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들이 더욱 깊고 묵직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영화의 시작은 아주 고요하고 미스터리해요. 어느 날 갑자기, 전 세계 12곳에 거대한 조약돌 혹은 렌즈콩처럼 생긴 미지의 비행 물체 ‘셸’이 나타나요. 아무런 공격도, 메시지도 없이 그저 상공에 고요히 떠 있을 뿐이죠. 당연히 전 세계는 패닉에 빠지고, 이들의 정체와 목적을 알아내기 위해 분주해집니다. 이 과정에서 미군은 최고의 언어학자인 루이스 뱅크스 박사(에이미 아담스)와 물리학자 이안 도널리(제레미 레너)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돼요. 그들의 임무는 단 하나, 외계 생명체와 ‘소통’해서 ‘왜 이곳에 왔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어내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그들의 언어는 우리가 아는 어떤 체계와도 달랐고, 소통은 첫걸음부터 거대한 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영화는 바로 이 ‘소통’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행위를 통해,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거대한 이야기의 문을 열어젖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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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영화를 단순한 SF를 넘어선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언어’를 다루는 방식 때문이에요. 영화 속 외계인 ‘헗타포드’는 소리가 아닌, 먹물을 공중에 뿌려 원형의 문자를 만드는 방식으로 소통해요. 이 문자는 시작도 끝도 없는 비선형적인 형태를 띠고 있는데, 이게 정말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아요. 우리는 보통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선형적인 시간 개념 속에서 살아가고, 우리의 언어 역시 그런 구조를 따르잖아요. 하지만 헗타포드의 언어는 문장 전체가 한 번에 완성되는, 즉 과거-현재-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는 그들의 시간 개념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어요. 루이스가 이 기묘하고 아름다운 언어를 배워나가는 과정은, 단순히 외국어를 배우는 수준을 넘어 다른 존재의 세계관과 인식 체계 전체를 이해해나가는 과정처럼 보였어요. 그 과정이 어찌나 섬세하고 지적인지, 마치 한 편의 철학 강의를 듣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더라고요.

그리고 이 지점에서 영화는 ‘사피어-워프 가설’이라는 실제 언어학 이론을 아주 영리하게 가져와요. 이 가설은 간단히 말해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가 그 사람의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결정한다’는 이론이에요. 영화는 이 가설을 극적으로 확장시켜서, 루이스가 헗타포드의 비선형적 언어를 습득하게 되면서 그녀의 시간 인식 능력 자체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줘요. 과거의 기억인 줄 알았던 장면들이 사실은 미래의 모습이었고, 미래를 ‘기억’하게 되면서 그녀는 시간의 굴레를 초월하는 경험을 하게 되죠. 처음에는 이 장면들이 다소 혼란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모든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면 정말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이건 단순한 반전이 아니라,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의식이 완성되는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순간인 것 같아요.

이 모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에이미 아담스의 연기는 정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어요. 그녀가 연기한 루이스는 거대한 미지의 존재 앞에서 두려워하면서도, 언어학자로서의 지적 호기심과 인류를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잃지 않는 강인한 인물이에요. 특히 영화 내내 그녀가 겪는 내면의 혼란과 슬픔,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그 순간의 표정 변화는 정말 압권이었어요. 화려한 액션이나 극적인 대사 없이도, 그저 눈빛과 미세한 표정만으로 캐릭터의 복잡한 감정선을 완벽하게 전달하더라고요. 그녀의 연기가 있었기에 이토록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이야기가 우리의 가슴에 직접 와닿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완성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드니 빌뇌브 감독의 연출력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네요. ‘시카리오’, ‘블레이드 러너 2049’, 그리고 최근의 ‘듄’ 시리즈까지, 그는 언제나 거대한 스케일 속에서도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능력이 탁월한 감독인 것 같아요. ‘컨택트’에서는 특히 그 능력이 빛을 발했어요. 외계인의 등장을 다루면서도 자극적인 스펙터클이나 소모적인 갈등을 최대한 배제하고, 대신 미지의 존재와 마주한 인간의 경외감과 두려움, 그리고 소통의 과정을 묵직하고 차분하게 그려내요. 여기에 더해, 이제는 고인이 된 요한 요한슨의 미니멀하고도 웅장한 사운드트랙은 영화의 신비롭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완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어요. 특히 셸 내부에서 헗타포드와 처음 조우하는 장면의 그 사운드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네요.

결국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궁극적인 질문은 이것인 것 같아요. ‘만약 당신의 삶에 다가올 모든 기쁨과 슬픔, 그 끝을 미리 알게 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삶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겠는가?’ 라고요. 영화의 마지막, 루이스가 내리는 선택은 우리에게 삶의 본질과 사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게 만들어요. ‘컨택트’는 단순한 오락 영화가 아니에요. 우리의 지성과 감성을 동시에 자극하며, 삶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바꿔놓을 수도 있는 아주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혹시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혹은 저처럼 이미 봤지만 그 여운을 잊지 못하고 계신다면, 고요한 밤에 혼자 오롯이 이 영화와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강력히 추천합니다. 아마 당신의 ‘인생 영화’ 목록에 조용히 이름을 올리게 될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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