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의 백미는 바로 이 순간이었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오니 너무 피곤했지만, 이 영화만큼은 꼭 보고 싶었습니다. 막상 재생 버튼을 누르니 피곤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어느새 영화에 완전히 빠져들어 있더라고요.
여러분은 비 오는 날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창밖으로 비 내리는 풍경을 보면서 따뜻한 커피 한 잔 하는 걸 참 좋아하는데요, 특히 그 장소가 뉴욕이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보곤 해요. 촉촉하게 젖은 거리, 재즈 선율이 흘러나오는 바, 노란 택시의 불빛이 번지는 풍경. 생각만 해도 정말 낭만적이지 않나요? 오늘 소개해 드릴 영화는 바로 그런 낭만을 스크린 가득 담아낸, 우디 앨런 감독의 ‘레이니 데이 인 뉴욕‘입니다. 티모시 샬라메와 엘르 패닝, 셀레나 고메즈라는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뉴욕의 하루는 어떤 모습일지, 저와 함께 흠뻑 빠져보실래요?
영화는 뉴욕의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개츠비(티모시 샬라메)와 애리조나 출신의 해맑은 여자친구 애슐리(엘르 패닝)가 뉴욕으로 주말 여행을 오면서 시작돼요. 애슐리가 학교 신문 과제로 유명 영화감독 롤란 폴라드를 인터뷰하게 됐거든요. 개츠비는 이 기회를 틈타 자신이 사랑하는 도시, 뉴욕의 진짜 매력을 애슐리에게 보여줄 완벽한 데이트를 계획합니다. 센트럴 파크의 마차, 근사한 레스토랑, 재즈 피아노 바까지. 하지만 세상 일이 늘 그렇듯, 계획은 시작부터 꼬이기 시작하죠. 애슐리가 인터뷰를 하러 간 사이,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두 사람은 각자 다른 길에서 뉴욕의 맨얼굴과 마주하게 됩니다. 과연 이들의 낭만적인 뉴욕 데이트는 무사히 성공할 수 있을까요?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티모시 샬라메가 연기한 ‘개츠비’라는 캐릭터인 것 같아요. 그는 마치 21세기에 잘못 태어난 1950년대 사람 같아요. 툭툭 내뱉는 말들은 냉소적이지만, 그 속에는 세상을 향한 자신만의 낭만과 철학이 담겨있죠. 비 오는 날의 뉴욕을 사랑하고, 쳇 베이커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피아노를 치고, 틈만 나면 포커 게임으로 돈을 따는 모습은 조금은 비현실적이지만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티모시 샬라메는 이런 개츠비의 고전적인 매력과 현대적인 소년미를 정말 절묘하게 섞어냈더라고요. 우디 앨런 영화 특유의 신경질적이고 말 많은 수다쟁이 캐릭터를 자신만의 색깔로 소화해내는 걸 보면서 ‘역시 티모시 샬라메구나’ 싶었답니다.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면서도 자신의 신념은 굽히지 않는, 미워할 수 없는 로맨티시스트였어요.
반면 엘르 패닝이 연기한 ‘애슐리’는 개츠비와는 정반대의 인물이에요. 애리조나의 햇살처럼 밝고 순수하지만, 그래서 더 세상 물정에 어둡고 허영심에 쉽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죠. 유명 감독, 시나리오 작가, 톱스타를 만나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그들의 말 한마디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뻐하는 모습은 솔직히 조금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하지만 엘르 패닝은 특유의 사랑스러운 연기로 그런 애슐리의 모습을 밉지 않게 그려냈어요. 아마 우리 모두 마음속 어딘가에는 애슐리처럼 인정받고 싶고, 특별한 세상에 속하고 싶은 욕망이 조금씩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개츠비가 꿈꾸는 낭만적인 뉴욕과 애슐리가 마주한 화려하지만 혼란스러운 뉴욕의 모습이 대비되면서, 두 사람이 과연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게 맞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어요.

이 장면에서 정말 소름이 돋았습니다
애슐리를 기다리다 지친 개츠비가 우연히 옛 친구의 영화 촬영에 휘말리게 되면서 만나게 되는 ‘챈'(셀레나 고메즈)의 등장은 영화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해요. 챈은 개츠비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진짜 뉴욕’의 모습을 닮은 사람 같았어요. 시니컬하면서도 솔직하고, 꾸밈없죠. 두 사람이 빗속에서 나누는 대화나 함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거니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 중 하나였어요. 특히 비 오는 뉴욕의 거리에서 나누는 키스신은 정말 낭만적이더라고요. 셀레나 고메즈는 짧은 등장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당당하고 시크한 매력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어쩌면 개츠비는 자신이 사랑한다고 믿었던 애슐리가 아니라, 자신과 같은 언어로 세상을 이해하는 챈 같은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기다려온 게 아닐까 싶었어요.
사실 이 영화는 ‘뉴욕’이라는 도시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디 앨런 감독이 왜 그토록 뉴욕을 사랑하는지 이 영화를 보면 단번에 이해가 가더라고요. 햇살 좋은 날의 활기찬 뉴욕이 아니라, 일부러 비가 내리는 잿빛의 뉴욕을 배경으로 삼은 것부터가 감독의 의도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촉촉하게 젖은 센트럴 파크, 고풍스러운 칼라일 호텔의 바, 불빛이 은은하게 새어 나오는 거리의 풍경까지. 영화의 모든 장면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담겨 있어요. 특히 영화 내내 배경으로 흐르는 재즈 음악은 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완성하는 화룡점정이었죠. 주인공들의 복잡한 감정선과 뉴욕의 풍경, 그리고 재즈의 선율이 어우러지면서 마치 관객인 저도 그들과 함께 뉴욕의 거리를 걷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현실의 뉴욕이라기보다는, 우리가 꿈꾸고 상상하는 ‘낭만의 도시’로서의 뉴욕을 완벽하게 그려낸 것 같아요.
물론 영화를 보면서 조금 아쉬운 점도 있었어요. 우디 앨런 감독의 다른 영화들처럼, 이 영화 역시 조금은 현실과 동떨어진 상류층의 이야기라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거든요. 주인공들이 돈 걱정 없이 뉴욕의 최고급 호텔과 레스토랑을 누비는 모습은 평범한 우리들의 삶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애슐리가 겪는 일련의 사건들도 다소 과장되고 우연에 기댄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어쩌면 이 영화는 처음부터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히려 한 편의 동화처럼, 비 오는 뉴욕에서 벌어지는 꿈같은 하루를 통해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와 결이 맞는 사람은 누구일까?’ 같은 질문들을 던지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결론적으로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낭만적인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기분 좋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티모시 샬라메의 팬이라면 그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영화고요. 비 오는 날, 왠지 마음이 센치해질 때, 이 영화와 함께 뉴욕으로 짧은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계획대로 되지 않는 하루 속에서 오히려 진짜 자신과 소중한 인연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영화가 끝나고 나면, 귓가에 감미로운 재즈 선율이 맴돌고 창밖으로 비가 내려주길 바라게 될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