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입니다
친구가 추천해줘서 반신반의하며 본 영화였는데, 완전히 제 마음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몇 시간 동안 계속 생각이 났어요. 이런 영화는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가끔 그런 영화가 있어요. 너무 유명해서 마치 다 본 것 같지만, 막상 제대로 시간을 내어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나면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그런 영화요. 저에게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가 바로 그런 작품이었어요. ‘인생 영화‘라는 말을 함부로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 영화 앞에서는 그 단어가 전혀 아깝지 않더라고요. 처음 봤을 때의 충격과 여운도 대단했지만,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고 다시 볼 때마다 캐릭터들의 다른 얼굴이 보이고, 그들의 선택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조금 더 이해하게 되는, 정말 깊고 거대한 서사인 것 같아요.
영화의 시작은 시칠리아 이민자 출신으로 뉴욕 암흑가를 장악한 거물, 돈 비토 꼴레오네의 딸 코니의 결혼식 장면으로 문을 열어요. 화려하고 행복한 결혼식 풍경 뒤편, 어두운 서재에서 돈 꼴레오네는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사람들의 ‘부탁’을 들어주죠. 그는 단순한 폭력배가 아니에요. 그만의 정의와 신념으로 움직이는, 존경과 두려움을 동시에 받는 ‘대부(Godfather)’ 그 자체죠. 이야기는 새로운 마약 사업을 제안하는 경쟁 조직의 인물 솔로소가 나타나면서 급변하기 시작해요. 돈 꼴레오네는 아이들과 여성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마약 사업은 ‘더러운 일’이라며 거절하고, 이 거절은 곧 꼴레오네 패밀리 전체를 뒤흔드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서막이 됩니다. 이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아버지의 ‘사업’과는 거리를 두고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 했던 막내 아들 마이클이 점차 빨려 들어가는 과정이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말론 브란도가 연기한 ‘돈 비토 꼴레오네’를 빼놓을 수는 없겠죠. 사실 처음에는 그의 웅얼거리는 듯한 특유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서 조금 답답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보면 볼수록 그 목소리와 느릿한 몸짓 하나하나에 담긴 무게감과 카리스마에 압도당하게 되더라고요. 입안에 솜을 물고 연기했다는 건 너무나 유명한 일화죠. 그는 폭력과 암살을 지시하면서도 가족에게는 한없이 다정한 아버지이자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줘요. 그 이중적인 모습이 정말 소름 돋을 정도로 사실적으로 다가왔어요. 힘 있는 자의 여유,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 그리고 가끔씩 내비치는 깊은 고뇌까지. 말론 브란도는 단순히 캐릭터를 연기한 게 아니라, ‘돈 비토 꼴레오네’라는 인물 자체를 스크린 위에 창조해낸 것 같아요. 그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은 마치 잘 그린 한 폭의 유화처럼 깊고 장엄한 분위기를 풍겼어요.

이 장면에서 정말 소름이 돋았습니다
하지만 ‘대부’가 진정으로 위대한 비극 서사가 될 수 있었던 건, 바로 알 파치노가 연기한 ‘마이클 꼴레오네’의 변화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영화 초반의 마이클은 전쟁 영웅이자 명문대 출신의 지성인으로, 가족의 어두운 세계와는 완전히 선을 긋고 살아가는 인물이었어요. 연인 케이에게 가족의 사업을 아무렇지 않게 설명하며 ‘그건 우리 가족이지, 내가 아냐(That’s my family, Kay. It’s not me.)’라고 말하던 그의 맑은 눈빛을 기억하시나요? 그랬던 그가 아버지가 총에 맞고 쓰러지자,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하나로 점점 변해가기 시작합니다. 병원에서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홀로 서 있던 장면, 그리고 솔로소와 부패 경찰을 처단하기 위해 레스토랑으로 향하던 그 떨리는 발걸음 속에서 우리는 한 순수했던 청년이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지를 목격하게 되죠. 알 파치노는 그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내면의 변화를 대사 없이도, 오직 차갑게 변해가는 눈빛과 굳게 닫힌 입술만으로 완벽하게 표현해냈어요. 그의 변화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3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릴 정도였어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연출은 정말 경이로울 정도예요. 특히 빛과 어둠을 활용하는 방식은 이 영화의 격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봐요. 꼴레오네 패밀리의 권력과 비밀이 오가는 실내는 대부분 어둡고 무겁게 표현되는 반면, 결혼식이나 마이클이 시칠리아에 머물 때의 장면들은 따스하고 밝은 햇살로 가득 차 있죠. 이 극명한 대비를 통해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내면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솜씨가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건, 영화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세례식 시퀀스’예요. 조카의 대부가 되어 신성한 맹세를 하는 마이클의 모습과, 그의 지시로 경쟁 패밀리의 수장들이 무자비하게 제거되는 장면이 교차 편집되는데, 여기서 느껴지는 아이러니와 전율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어요. 성스러움과 잔혹함, 탄생과 죽음, 구원과 파멸이 공존하는 이 장면은 마이클이 완전히 새로운 ‘대부’로 거듭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야말로 압권인 순간이었어요.
그리고 이 영화의 분위기를 완성하는 마지막 한 조각은 단연 니노 로타의 음악일 거예요. ‘따라따라라~’하고 시작되는 메인 테마는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텐데요. 이 선율에는 단순히 비장함만 담겨 있는 게 아니에요. 시칠리아의 쓸쓸한 황혼, 가족에 대한 애틋함,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운명에 대한 깊은 슬픔이 모두 녹아있는 것 같아요. 영화의 중요한 순간마다 흘러나오는 이 음악은 단순한 배경음악을 넘어,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대변하고 관객들의 마음을 저릿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배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생각해요. 음악이 이렇게까지 영화와 완벽하게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걸 ‘대부’를 통해 처음 느꼈던 것 같아요.
결국 ‘대부’는 단순한 갱스터 영화가 아니라, ‘가족‘과 ‘권력’, 그리고 ‘운명’에 대한 거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마이클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지만, 그 과정에서 정작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버리게 되죠. 권력을 지키기 위해 더 큰 권력을 휘두를수록 그는 점점 더 고립되고, 인간성을 상실해갑니다. 영화의 마지막, 새로운 돈 꼴레오네가 된 마이클을 향해 문이 ‘쿵’ 닫히고, 그 모습을 케이가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는 장면은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어요. 그는 과연 가족을 지켜낸 승리자일까요, 아니면 자신의 영혼을 팔아버린 패배자일까요?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영화가 우리에게 묵직한 울림을 주는 건, 바로 이런 보편적이고도 철학적인 질문들을 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아직 이 걸작을 경험하지 못하셨거나, 아주 오래전에 보셨다면 이번 기회에 꼭 다시 한번 감상해 보시길 추천해 드려요. 아마 예전과는 전혀 다른 감동과 무게감으로 다가올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