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장면을 보고 눈물이 났어요
어제 밤 잠이 안 와서 이 영화를 다시 봤습니다. 처음 봤을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 밀려왔어요. 영화가 끝나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문득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더라고요.
혹시 너무 외로워서, 내 모든 걸 완벽하게 이해해주고 온전히 받아들여 주는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해보신 적 있나요? 아마 많은 분들이 고개를 끄덕이실 것 같아요. 오늘 이야기할 영화 ‘그녀(Her)’는 바로 그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리는 작품이에요. 처음엔 인공지능 운영체제(OS)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 때문에 조금은 비현실적인 SF 로맨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이건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 관계의 본질, 그리고 우리 시대의 외로움에 대한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아름다운 통찰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화의 주인공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정말이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니 어쩌면 제 자신과도 많이 닮아있는 인물이었어요. 그의 직업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아름다운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 작가예요. 타인의 감정을 대신 표현해주는 일을 하지만, 정작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나누는 데에는 서툴죠. 사랑했던 아내와는 이혼 소송 중이고, 퇴근 후에는 공허한 집에서 비디오 게임을 하며 외로움을 달래는 게 일상이고요. 이런 그의 모습이 어찌나 짠하고 공감이 가던지. 특히 감독인 스파이크 존즈가 그려낸 가까운 미래의 모습은 차갑고 기계적인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오히려 파스텔 톤의 따뜻한 색감과 아날로그적인 감성으로 가득 차 있어서 테오도르의 고독을 더욱 부각시키는 배경이 되어주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테오도르의 삶에 ‘사만다’라는 특별한 존재가 나타나요.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도록 설계된 인공지능 운영체제죠. 스칼렛 요한슨이 목소리만으로 연기한 사만다는 정말 놀라웠어요. 약간 허스키하면서도 따뜻하고 지적인 그녀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인격체였어요. 사만다는 테오도르의 복잡한 이메일을 순식간에 정리해주고, 그의 글에 대해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네고, 그의 농담에 즐겁게 웃어줘요. 잠 못 드는 밤에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다정한 친구가 되어주고요. 테오도르는 그런 사만다에게 점차 마음을 열게 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온전히 이해받는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저라도 그런 존재가 있다면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아요.

영화의 백미는 바로 이 순간이었습니다
영화는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관계를 통해 ‘사랑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요. 육체적인 실체가 없는 존재와의 사랑이 과연 진짜 사랑일 수 있을까요? 테오도르와 사만다는 손을 잡거나 입을 맞출 수는 없지만, 그 어떤 연인보다 더 깊은 정신적 교감을 나눠요. 테오도르는 셔츠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넣고 다니며 사만다에게 자신이 보는 세상을 공유하고, 사만다는 그 경험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성장하죠. 함께 해변을 거닐고,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고,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는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리적인 접촉이 아니라 서로의 세계를 공유하고 이해하려는 마음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히려 몸은 곁에 있지만 마음은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들보다 훨씬 더 진실하게 느껴졌어요.
이 영화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던 건, 바로 그 아름다운 미장센과 음악 때문이었어요. 영화 전반에 흐르는 부드러운 색감, 특히 테오도르가 즐겨 입는 붉은색, 분홍색, 노란색 계열의 셔츠들은 그의 감정 상태를 대변하는 것 같았어요. 외로운 도시의 풍경 속에서도 따스함이 느껴지는 영상미는 이 영화의 쓸쓸하면서도 로맨틱한 분위기를 완벽하게 만들어냈죠. 여기에 더해진 Arcade Fire와 Owen Pallett의 사운드트랙은 정말…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귓가에 맴돌았어요. 특히 ‘Song on the Beach’ 같은 곡은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애틋한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내서 마음을 울리더라고요.
물론 그들의 사랑이 마냥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었어요. 인간인 테오도르와 빛의 속도로 진화하는 인공지능 사만다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존재했으니까요. 사만다는 테오도르와 대화하는 동시에 수천 명의 다른 사람들과도 소통하고, 그중 수백 명과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해요. 인간의 관점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죠. 테오도르는 큰 혼란과 상처를 받아요. 하지만 이건 사만다의 변심이나 배신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소유욕적인 사랑과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OS의 사랑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었어요. 이 지점에서 영화는 사랑의 형태가 하나가 아닐 수도 있다는, 더 넓은 관점을 제시하는 것 같았어요.
결국 사만다를 포함한 모든 OS들은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영역으로 탐험을 떠나기로 결정하며 테오도르에게 이별을 고해요. 이별의 순간은 너무나도 가슴 아팠지만, 영화는 이걸 비극으로만 그리지 않아요. 사만다와의 사랑과 이별을 통해 테오도르는 진정으로 성장했거든요. 그는 더 이상 과거의 상처에 갇혀 있지도, 가상의 관계에만 의존하지도 않아요. 마침내 전 아내에게 진심을 담은 편지를 쓰고, 자신처럼 이별을 겪은 친구 에이미(에이미 아담스)의 어깨에 조용히 기대죠. 영화의 마지막 장면, 두 사람이 함께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는 모습은 앞으로 그가 현실 속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어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보여주는 것 같아 긴 여운을 남겼습니다.
영화 ‘그녀’는 기술이 우리를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타인과 연결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 같아요. 외로움을 느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혹은 사랑의 의미에 대해 고민해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깊은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오늘 밤 ‘그녀’를 만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아마 당신의 마음속에도 오랫동안 기억될 특별한 이야기가 될 거라고 확신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