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2005): 첫인상의 오만함과 엇갈린 사랑의 편견에 대하여

여러분, 가끔씩은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보고 싶어지는 영화가 있지 않나요? 제게는 조 라이트 감독의 ‘오만과 편견’이 바로 그런 영화예요. 고전 소설 원작 영화는 자칫하면 지루하고 딱딱할 수 있다는 편견이 있는데, 이 영화는 볼 때마다 19세기 영국 시골의 싱그러운 아침 햇살 속으로 저를 데려다주는 것 같아요. 배우들의 숨결 하나하나, 흔들리는 촛불, 비 내리는 소리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어우러져서 단순한 로맨스 영화를 넘어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보고 나면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랄까요. 그래서 오늘은 이 아름다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좀 길게 나눠볼까 해요.

영화는 베넷 가문의 다섯 자매 이야기로 시작해요. 당시 여성에게 결혼이 곧 생계이자 신분 상승의 거의 유일한 길이었던 시대, 딸들을 좋은 가문에 시집보내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인 베넷 부인의 모습이 꽤나 현실적으로 다가오죠. 그중에서도 둘째 딸인 엘리자베스, 우리가 ‘리지’라고 부르는 그녀는 조금 특별해요. 당차고, 지적이고, 무엇보다 사랑 없는 결혼은 절대 할 수 없다고 믿는, 시대를 앞서간 여성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이 평화롭고 조금은 무료한 시골 마을에 젊고 부유한 신사 빙리와 그의 친구 다아시가 나타나면서 모든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마을 전체가 들썩이는 무도회,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렘과 기대가 가득한 그곳에서 리지와 다아시의 운명적인, 그리고 아주 삐걱거리는 첫 만남이 이루어져요.

무도회에서 처음 마주친 리지와 다아시. 이 첫 만남이 바로 모든 오해의 시작점이었어요. 다아시는 무뚝뚝하고 오만한 태도로 리지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리지는 그런 다아시를 ‘세상에서 가장 재수 없는 속물’이라고 단정 지어버리죠. ‘오만(Pride)’으로 자신의 상처받기 쉬운 내면을 방어하는 남자와, ‘편견(Prejudice)’이라는 날카로운 잣대로 상대를 재단하는 여자. 이 둘의 팽팽한 신경전은 영화 내내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만들어내요. 서로에게 강렬하게 끌리면서도 결코 그 마음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그 감정의 줄다리기가 정말 섬세하게 그려져서, 보는 내내 저도 같이 마음을 졸이게 되더라고요. 특히 독설을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서로의 지성에 감탄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상대방을 의식하게 되는 과정이 너무나도 설득력 있게 다가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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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라 나이틀리가 연기한 엘리자베스는 정말 사랑스러워요. 단순히 예쁜 주인공이 아니라, 생기 넘치는 눈빛과 재치 있는 입담, 그리고 그 누구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당당함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거든요. 그녀가 진흙투성이 드레스를 입고 아픈 언니를 간호하기 위해 빙리의 저택에 당당히 걸어 들어가는 장면이나, 자신의 가족을 무시하는 거만한 귀족 부인에게 조목조목 따지는 모습은 정말 통쾌하기까지 했어요. 그녀의 웃음, 그녀의 눈물, 그녀의 분노 하나하나에 관객은 완전히 몰입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녀의 단단했던 ‘편견’이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사랑 앞에서 서서히 녹아내리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이 영화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죠. 그녀는 마냥 순종적인 여인이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스스로 쟁취할 줄 아는 진정한 주체적인 여성이었어요.

그리고 미스터 다아시. 매튜 맥패디언이 연기한 다아시는 정말… ‘역대급’이라는 말밖에 안 나와요. 많은 분들이 콜린 퍼스의 다아시를 ‘정석’으로 꼽지만, 저는 매튜의 다아시가 뭐랄까, 좀 더 서툴고, 사회성에 문제가 있어 보일 정도로 내향적이며, 상처받기 쉬운 내면을 가진 남자로 느껴져서 더 마음이 가더라고요. 겉으로는 차갑고 무뚝뚝하지만, 그 깊고 슬퍼 보이는 눈빛 속에는 리지를 향한 숨길 수 없는 열망과 고뇌, 그리고 애정이 담겨있죠. 특히 비를 맞으며 사랑을 고백하던 그 유명한 장면에서의 연기는 정말 압권이에요. 사랑을 고백하면서도 상대방 가문의 단점을 지적하는 최악의 고백이었지만, 거절당한 후의 상처받은 표정과 떨리는 목소리는 다아시라는 인물이 가진 오만함 뒤의 연약함을 보여주면서 그를 단순한 악역이 아닌, 미워할 수 없는 남자로 만들더라고요. 그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도 이 영화의 핵심적인 관전 포인트인 것 같아요.

조 라이트 감독의 연출은 이 영화를 단순한 고전 각색을 넘어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고 생각해요. 특히 롱테이크 기법으로 촬영된 무도회 장면은 정말 인상 깊었어요. 카메라가 인물들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감정의 교류와 미묘한 시선들을 한 번에 담아내거든요. 마치 우리가 직접 그 무도회에 참석해서 춤추는 남녀들을 훔쳐보는 듯한 현장감을 줬어요. 또한, 새벽녘의 안개, 비에 젖은 들판, 고성의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살 같은 자연광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화면 전체가 한 폭의 명화처럼 느껴지게 만들었죠. 모든 장면이 그냥 찍힌 게 아니라, 철저하게 계산된 ‘미장센’이라는 게 느껴졌어요. 이런 아름다운 영상미 덕분에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영화의 감성을 완성하는 건 단연코 음악이에요. 다리오 마리아넬리의 피아노 선율은 영화가 시작하는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우리의 마음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아요. 리지의 경쾌한 발걸음을 따라 흐르는 듯한 ‘Liz on Top of the World’나, 다아시의 고뇌와 사랑이 담긴 듯한 ‘Dawn’ 같은 곡들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귓가에 맴돌죠. 음악만 들어도 영화의 명장면들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질 정도니까요. 이 서정적인 스코어 덕분에 인물들의 감정선이 더욱 풍부하게 전달되고, 영화의 로맨틱한 분위기가 한층 더 깊어진 것 같아요. 저는 가끔 이 영화 OST를 틀어놓고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시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영화 속 세상에 다시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결국 ‘오만과 편견’은 서로 다른 세상에 속한 두 남녀가 자신의 오만과 상대에 대한 편견을 깨고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예요. 200년도 더 된 이야기지만, 첫인상만으로 상대를 판단하고, 자존심 때문에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 영화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 로맨스 영화’로 꼽히는 게 아닐까요? 사랑 앞에서 솔직해지는 것, 그리고 겉모습 너머에 있는 상대방의 진정한 모습을 보려고 노력하는 것의 중요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 아직 안 보신 분이 있다면 꼭 한번 보시라고, 이미 보신 분이라도 비 오는 날이나 햇살 좋은 날 다시 한번 꺼내보시라고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네요. 아마 볼 때마다 새로운 감동과 설렘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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