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시민(2009): 시스템이 정의를 배신했을 때, 한 남자의 처절한 복수가 시작된다

영화 장면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입니다

어제 밤 잠이 안 와서 이 영화를 다시 봤습니다. 처음 봤을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 밀려왔어요. 영화가 끝나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문득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더라고요.

가끔 그런 영화가 있잖아요. 보고 나면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나라면 어땠을까?’, ‘무엇이 진짜 정의일까?’ 하는 질문이 며칠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영화요. 저에게는 F. 게리 그레이 감독의 ‘모범시민‘이 바로 그런 작품이었어요. 개봉한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이 영화가 던지는 묵직한 질문은 지금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해서 그런지, 볼 때마다 새로운 생각에 잠기게 만들더라고요. 단순히 ‘복수극‘이라는 한 단어로 규정하기엔 너무나도 복잡하고, 또 가슴 아픈 이야기인 것 같아요.

영화의 시작은 너무나도 평범하고 행복한 한 가정의 모습으로 우리를 안심시켜요. 발명가인 클라이드 셸턴(제라드 버틀러)은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어린 딸과 함께 단란한 저녁을 보내고 있었죠. 하지만 그 평화는 정말 순식간에, 악몽처럼 깨져버려요. 갑자기 들이닥친 두 명의 강도에 의해 그의 눈앞에서 아내와 딸이 무참히 살해당하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비극을 겪게 됩니다. 관객은 이 장면만으로도 클라이드의 고통에 깊이 이입하게 되고, 당연히 저 악랄한 범인들이 법의 엄중한 심판을 받기를 바라게 되죠. 하지만 영화는 우리의 기대를 보기 좋게 배신하며 진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범인들은 곧 잡히지만, 야심 넘치는 젊은 검사 닉 라이스(제이미 폭스)는 자신의 유죄 판결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주범과 어처구니없는 사법 거래를 하고 맙니다.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한 명은 가벼운 형량을 받고 다른 한 명은 사형을 선고받지만, 이 과정에서 클라이드는 법과 시스템이 결코 자신과 같은 피해자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게 돼요. 사랑하는 모든 것을 잃은 것도 모자라, 정의마저 자신을 외면했다는 절망감. 이 순간, 평범했던 ‘모범시민’ 클라이드는 사라지고, 시스템 자체를 심판하려는 거대한 복수의 설계자가 태어나는 순간이었어요. 그는 무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주 치밀하고 잔혹한 계획을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영화 장면

영화의 백미는 바로 이 순간이었습니다

10년 후, 클라이드의 복수는 정확하고 무자비하게 시작돼요. 자신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안겨줬던 바로 그 범인들을, 법이 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직접 처단하죠. 그리고는 너무나도 순순히 감옥으로 들어갑니다. 바로 여기서부터 영화는 진짜 소름 끼치는 지점으로 달려가기 시작해요. 클라이드는 분명 철저히 격리된 독방에 갇혀 있는데, 그가 경고했던 대로 도시 곳곳에서는 사법 시스템에 연루된 사람들이 차례차례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거든요. 검사, 판사, 변호사 할 것 없이 법의 이름으로 타협하고 안주했던 모두가 그의 심판 대상이 됩니다. 닉 라이스는 감옥 안의 클라이드가 어떻게 이 모든 일을 벌이는지 알아내려 애쓰지만, 그는 언제나 한 수, 아니 열 수 앞을 내다보며 닉과 사법 시스템 전체를 조롱하죠. 영화는 단순한 액션 스릴러를 넘어, 두뇌 싸움이 아주 팽팽한 심리전으로 변모해요.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두 주연 배우, 제라드 버틀러와 제이미 폭스의 연기 대결인 것 같아요. 특히 제라드 버틀러가 연기한 클라이드는 정말 역대급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그는 단순히 분노에 찬 복수귀가 아니에요. 눈빛에는 가족을 잃은 깊은 슬픔이 서려 있으면서도, 자신의 계획을 실행할 때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지성과 광기가 동시에 느껴지죠. 그의 행동은 분명 용납될 수 없는 범죄지만, 관객들은 이상하게도 그의 복수를 응원하게 되는 딜레마에 빠져요. 그가 시스템에 던지는 질문들이 너무나도 날카롭고 정당하게 들리기 때문이죠. ‘300’의 강렬한 전사 이미지가 강했던 제라드 버틀러가 이렇게까지 섬세하고 복합적인 내면 연기를 잘 해낼 줄은 몰랐는데, 이 영화를 통해 그의 진가를 다시 보게 됐어요.

그에 맞서는 제이미 폭스의 연기 또한 훌륭했어요. 닉 라이스는 처음에는 성공에 눈이 먼 속물적인 검사처럼 보이지만, 클라이드의 예측 불가능한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점차 변화하는 인물이에요. 그는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법’과 ‘시스템’의 허점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고, 그 안에서 고뇌하죠. 클라이드가 던지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가장 괴로워하는 사람이 바로 닉 자신인 셈이에요. 감옥 안과 밖에서 펼쳐지는 두 사람의 팽팽한 대화 장면들은, 웬만한 액션 장면보다도 더 큰 긴장감을 만들어내더라고요.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두 남자의 충돌이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가장 강력한 엔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결국 ‘모범시민’은 우리에게 아주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예요. ‘법이 정의를 실현해주지 못할 때, 개인이 직접 심판하는 것은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은 클라이드의 편에 서서 통쾌함을 느끼다가도, 그의 방식이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보며 불편함을 느끼게 될 거예요. 바로 이 지점이 감독이 노린 것이 아닐까 싶어요. 쉽사리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것 말이죠. 영화의 제목인 ‘준법시민(Law Abiding Citizen)’은 그래서 더욱 역설적으로 들려요. 법을 가장 잘 지키며 살아가던 한 평범한 시민이 어떻게 법의 가장 무서운 적이 되어가는지를 보여주니까요. 아마 영화가 끝난 후에도 친구나 연인과 이 영화의 결말과 메시지에 대해 한참 동안 이야기하게 될지도 몰라요.

단순한 킬링타임용 스릴러를 넘어, 묵직한 여운과 함께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를 찾으신다면 ‘모범시민’을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어요. 정의와 복수, 법과 양심 사이에서 길을 잃은 한 남자의 처절한 싸움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스크린에 완전히 몰입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제라드 버틀러의 인생 연기와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탄탄한 스토리가 주는 재미는 물론이고요. 아직 안 보신 분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꼭 한번 감상해 보시길 바라요. 분명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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